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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오와 쥴리엣> 공연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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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챠드 니콜스(Richard Nichols) 씀, 정진수 옮김

  
막이 올라가서부터 커튼콜까지 진지한 예술적 목표와 일관성이 이 공연에서 느껴졌으며 내가 한국에 체류중에 이 공연을 보게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제한된 지면 관계로 출연진의 훌륭한 연기들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음으로 여기서는 연극적으로 특별히 뛰어났던 몇 장면들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초대자 명단을 읽으려 애쓰는 하인, 머쿠시오와 로미오의 장면, 머쿠시오와 티볼트가 죽은 뒤의 공작의 등장, 유모가 꾀병 부리는 장면, 로렌스 신부와 로미오가 처음 만나는 장면, 그리고 발코니 장면 등이다. 연출을 비롯한 이 공연의 제작진과 단원들의 시도와 그에 상응하는 훌륭한 결과에 찬사를 보낸다.
이 공연을 위하여 다국적 인재들을 동원한데서 추측컨대 이 작품의 공연은 한국적 미적 감각과 세계 무대를 겨냥하여 한국의 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공연을 본 나의 소감은 지난 20년 가까이 미국의 연기 지망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것을 전문으로 해온 한 미국인 교육자겸 예술가의 관점에 국한한 것이다. 따라서 이 공연에 대한 나의 소감은 한국적 여건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캐스팅이나 인물의 해석등에 관한 나의 지적은 부적절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로미오와 쥴리엣>을 '환상적 비극'(fantastic tragedy)이라고 해석한 데 대하여는 동의하지 않치만 이런 내 생각은 이 자리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나의 관찰과 제안을 이 공연과 관련하여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에 국한하고 앞으로도 셰익스피어를 뮤지컬화 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는 부분들에 국한하고자 한다.
다음의 세가지 부면들을 보면 이 공연은 한국의 젊은 관객들과 북아메리카의 관객을 겨냥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대본 수정은 인물들의 성격을 보다 단순화했으며 말도 안되는 가문의 자존심 때문에 피비린내를 불러온 셰익스피어의 기본 설정을 약화시켰다.
●낭만적인 록 음악은 때로 매우 아름답지만 스테픈 손하임의 뮤지컬 곡에서 느껴지는 인물 심리의 섬세함을 느낄 수 없었다.
●공연에서의 성적 묘사의 부재는 특히 가면 무도회의 키쓰 장면과 뒤의 발코니 장면에서도 두드러졌다.(두 주인공의 성적 충동이 안 그려지고 마치 동화속의 인물들처럼 곱게만 그려졌다.)
나의 추측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를 잘 알고 존경하는 북미의 장년층 관객들은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이 공연에 이끌리지 않을 것이나 중고등학교의 청소년 관객들은 즐겁게 보리라 믿는다. 내가 본 2월 11일의 공연도 객석을 메운 대다수 젊은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나의 관극소감은 다음의 다섯가지 항목들에 관한 것이다.

1. 무대장치와 의상 디자인. (조명 디자인은 공연장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임으로 언급을 생략한다.)
2. 음악과 셰익스피어의 텍스트
3. 공연의 정서적 단조로움
4. 칼 싸움과 폭력 장면
5. 발레
 
  
무대장치에 대하여

무대장치는 시각적으로 매력 있었으며 연출가는 동작과 무드를 상승시키기 위하여 적절히 활용했다. 그러나 장치의 크기와 복잡성이 공연의 진전을 방해했다. 현재 상태에서 이 복잡한 장치를 수정하고 장면 전환을 바꿀 수는 없겠으나 향후 셰익스피어를 또 공연할 때에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 자체가 수많은 장면 전환의 방해를 받지 않을 때 더 좋은 공연이 된다는 점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복잡하고 느린 전환은 최후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극의 진전을 방해한다. 원작에는 의도되지 않은 수많은 암전(blackout)들은 "비연극적 사건"이며 감정적 공백이 되며 2막에서의 각일각 조여오는 위기 구축을 방해한다. 따라서 공연은 2막에 들어와서 '달리지' 못했다. 셰익스피어는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속도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간은 로미오와 쥴리엣에게 적(敵)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데 이 공연은 뒤로 갈수록 느려져서 시간상으로는 10분 정도이지만 감정의 시간으로는 20분 정도 느려졌다고 본다. (배우들은 그들의 연기에 더 절박함과 중요함과 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고 보며 여기에 대하여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만약에 장치가 꼭 이번처럼 복잡해야 했다면 장면전환을 암전이 아니라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장면 전환을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하는 것으로 바꾸기는 늦었지만(왜냐하면 이런 전환은 연습의 초기 단계에서 이미 안무되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장면 전환을 한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극에의 몰입을 유지시키며 또한 잘 처리되었을 경우 미학적으로도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의상에 대하여

의상은 극중 인물에 대한 즉각적인 인상을 잘 살려주었으며 디자이너가 선택한 선과 색은 내게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의상들은 착용하고 연기하는데 지장이 없었으며 인물들의 각 세대에 따라서 다른 선과 색과 재질을 잘 구분하여 선택했다. 다만 한가지 불만스러웠던 것은 많은 배우들이 착용한 신발이었다. 젊은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장식이 복잡한 나이 든 인물들과 구별지우려 했던 점은 충분히 이해되나 갈색의 에어로빅 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인물들에게서는 시대 고증의 느낌이 없었다. 따라서 옛 시대의 춤을 보이는 가장 무도회에서 내가 보기에 무용수들은 당시대의 신체적 움직임의 특징을 살려내지 못했다. 그들의 손과 다리는 춤을 추었지만 구두는 따라가지 못했다. 발끝이 들어나지 못하고 뭉툭한 느낌을 주었다. 이제 와서 새로 춤을 위한 구두를 장만하는 것은(비록 나의 지적이 옳다고 해도)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나 배우들로 하여금 그들의 발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서 현재의 구두를 신고도 춤을 추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울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음악에 대하여

음악의 톤과 리듬의 변화는 내게 매우 즐거웠다. 연인들의 이중창에서 노래가 두성이나 흉성에서 다른 톤으로 바뀔 때 나는 음악에 빠져들었다. 이런 노래들은 관객들의 기억에 각인될 것이며 공연을 보고나서 며칠 뒤까지도 흥얼거리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두가지 점들은 출연진의 뛰어난 가창력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하여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1) 첫째, "Mab, Mab, Mab" 같은 노래에서 배우들은 저희끼리 주고 받지 않고 직접 관객을 향하여 불렀다. 그런 순간에 난 내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노랫말 속에 짜깁기 한 록 콘서트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이 공연을 보면서 특히 발코니 장면과 결혼식 장면은 노래 뿐 아니라 연기도 출중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훌륭한 뮤지컬에서 왜 노래가 들어가느냐 하면 그것을 노래가 아닌 말로서만 표현하기는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뮤지컬의 배우들에게 노래를 부를 때 그 노래를 누구에게 누구를 위하여 부르는 것인가를 분명히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주로, 특히 처음에는 무대 위의 다른 인물을 향하여 또는 자기 자신에게(유모의 경우처럼) 불러야 하는 것이지 관객은 이차적인 대상일 뿐이다. 물론 노래를 한참 부르다 보면 대상이 넓어질 것이지만 적어도 시작할 때에는 누구에게 누구를 위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를 잊어서는 안된다.
2) 둘째, 2막에서 음악의 템포와 리듬은 무대 하수쪽에 설치된 스크린에 비쳐지는 셰익스피어의 대사의 템포와 자주 어긋났다. 가령 로미오는 추방된 순간 이후부터 그의 심장의 고동은 증가하고 강열해진다. "로미오는 추방되었다"(But Romeo is banished)와 그 다음 대사들은 자음과 음절수를 통해서 마음이 급함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때의 음악은 서정적으로 부드럽게 처지기만 해서 셰익스피어가 쓴 대사의 남성적 힘이 없고 느린 장치 전환과 더불어 극진행을 늦추며 강도가 약해져서 마치 로미오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고 관객은 로미오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미오는 결코 자포자기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억척스럽게 투쟁한다. 이 점은 쥴리엣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이 부분의 음악을 바꿀 수는 없다. 만일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때의 음악을 어찌 해야 할까?
 

연기에 대하여

배우들은 극의 긴박감을 높혀주는데 기여할 수 있다. 매 장면에서 그들이 맡은 기능을 살려냄으로서 주어진 장면의 "정서적 모양"(emotional shape)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극의 초반에 패리스는 쥴리엣과 결혼할 희망을 품고 등장한다. 그런데 2막에서 우리는 또다시 신부의 집에서 그를 만난다. 그때는 패리스가 쥴리엣과 약혼한 뒤이다. 그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고 그래서 기쁨에 넘쳐 쥴리엣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지 기대에 부풀게 된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는 다른 반응을 쥴리엣으로부터 얻는다. 그는 실망하고 혼란되며 상처를 입는다.(그래서 뒤에 묘지에서 로미오와 싸우게 된다. 이 장면은 공연에서 삭제되었지만) 불행히도 패리스에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배우는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에 부여한 정서적 긴장을 살려내지 못했다. (패리스와 관련하여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그의 얼굴을 가린다. 그는 조명을 받으려면 고개를 쳐들어야 한다.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그의 대사도 듣기 어렵다.)
그러나 패리스의 경우는 많은 것들중의 한 예에 불과하다. 난 유모와 신부의 연기를 충분히 즐겼지만 그들도 극의 진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극중의 기능은 관객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젊은 연인들을 돕고 복돋워주는 것이다. 그들은 선의로 하는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두 연인의 죽음을 초래하고 말았지만. 그들의 뜻과는 달리 재앙을 가져왔는데 이는 그들에게는 절망적 사건이지 매일 있는 흔한 일이 아니다. 대본 각색자는 중요한 많은 감정적 정보들을 삭제해버렸다. 예를 들면 케퓰렛과 쥴리엣의 희극적 엔딩은 쥴리엣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감정적 장애물을 앗아가 버렸다. (쥴리엣이 아버지 캐퓰렛으로부터 패리스와의 결혼 얘기를 듣고 반가워하지 않자 캐퓰렛은 크게 분개하고 이것이 쥴리엣에게는 크나큰 위험이 되는데 이 캐퓰렛의 분노에 찬 긴 대사가 삭제되었다. 공연에서 관객들은 캐퓰렛이 퇴장할 때 오히려 웃어버렸다. 캐퓰렛이 쥴리엣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면 비극이 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배우들은 그들의 상상력으로 삭제된 내용을 되살려 내야 한다. 주로 2막에서 삭제된 절박함을 대사를 통해서 살려내야 하는데 내가 본 매 장면들은 정서적으로 평면적이어서 매 장면에 담긴 감정의 복잡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대격투에 대하여

배우들은 무기가 극중 인물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들은 무기를 장난감처럼 다루었다.) 그리고 싸움은 춤이 아니라 싸움이다. 셰익스피어의 극중 인물들은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자 한다. 이 공연의 배우들은 칼을 다루면서 마냥 춤을 추었다. 인물의 성격을 만드는 일은 무시되었다. 싸움은 좋은 음악처럼 춤을 추기 위한 구실이 아니라 극중 인물의 욕구의 결과이며 연장이다.
배우들은 칼을 매우 위태하게 다루었다. 그중의 하나는 칼끝이 무대 바닥에 먼저 부딪혔고 튀어나갔다. 칼은 반드시 자루쪽이 먼저 던져져야 하며 객석 방향으로 던져져서는 절대로 안된다. 배우들은 불행히도 무기 때문에 다치기도 하지만 다칠려고 돈내고 연극보러 오는 관객은 없다. 미국에서 만일 관객이 칼에 다쳤다면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한다.
 

티볼트의 연기에 대하여

그의 과잉 연기(over-acting)는 <로미오와 쥴리엣>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다른 작품에 출연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투하기 직전에 그는 무대앞으로 걸어나와서 씩 웃었는데 그가 맡은 배역이 얼마나 악역인지를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했을 뿐 머쿠시오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는 관객을 향하여 포즈를 취하며 마치 한국 영화의 조폭 깡패처럼 멋있게 보이려고 애쓸 뿐 정작 결투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연기는 따라서 납득할 수 없었고 우숩게 보였으며 그가 만약에 미국에서 똑같이 연기한다면 미국 관객들은 박장대소할 것이다. 누군가 그에게 그가 맡은 티볼트역은 결코 악당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바란다. 티볼트는 성미가 급하고 이기적이지만 악당은 아니다. 그의 증오는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얼굴 표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로미오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며 관객은 바보가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가장 잘 쓰여진 것이다. 이 두가지는 믿어도 좋다.
 

발레에 대하여

공연 앞 뒤에 사용된 발레는 내겐 아무런 예술적 느낌을 주지 못했다. 내가 추측컨대 아마도 이 작품을 "환상적 비극"이라고 생각한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두 번의 춤의 이미지는 이 작품 어디에서도 발견될 수 없다. 맨 앞의 발레는 연극의 첫 장면을 소개하고 극을 시작하기 위한 구실처럼 보인다. 얼마나 많은 한국 관객이 발레를 보며 노래 가사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동시에 발레를 보고 음악을 듣고 영어 자막을 읽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난 이 작품을 30년 이상 친숙하게 알아왔지만 나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난 아기천사가 이 작품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앞의 발레는 불필요했고 뒤의 발레는 안티 클라이맥스였으며 연극적 중요성이 없다는 것은 말 할 수 있다. 우리가 보고 싶어서 구경왔던 두 주인공은 죽었으며 묘지 장면에서 훌륭하게 연기해낸 두 배우들은 극의 마지막에 중심적 이미지로 대접받을 충분한 자격을 획득했다. 마지막에 공작의 연설이 없었다 해도 연극은 쥴리엣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셰익스피어의 결말은 무자비하고 단호하다. 어떤 부드러운 몽환적 요소도 없으며 한국 연극에서 흔히 보는 '광내기'(glitter)도 없다. (난 한국에서 75편의 연극을 봤는데 많은 공연들이 내용과 상관없이 광을 낸다. 심지어 사실적 연극에서조차. 뮤지컬에서는 걸핏하면 포그를 뿌려대는 것도 일종의 광내기인데 이런것들은 연극적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이제 와서 발레 장면을 어찌할 수는 없겠으나 이 공연은 쥴리엣의 사망과 함께 끝이 났다. 발레 장면은 억지스럽게 보였으며 효과를 거두지 못한 단지 '흥미있는 아이디어'에 불과했으며 셰익스피어의 간소한 프롤로그와 공작의 힘있는 마지막 연설을 따르지 못한다.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이 작품을 잘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내 의견에 동조하리라 믿는다.
이상 나의 소감을 마치며 난 이 공연에 일부 다른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훌륭한 공연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며 셰익스피어의 원전도 일부 삭제에 문제가 있긴 했어도 비교적 충실했다고 믿는다. 이 공연은 그 열정과 상상력과 예술적 기량에 있어서 한국 연극을 대표할만한 공연이었다고 확신한다.
끝으로 이 공연과 관련된 한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뮤지컬 연극에서 녹음된 음악을 사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실정은 모르나 오케스트라 없는 뮤지컬은 무대에서 배우들이 마시는 위스키와도 같다. 진짜 같이 보일 뿐 진짜와 같은 느낌을 줄 수 없다. 내가 한국에서 들은 녹음된 음악은 너무 깨끗하고 너무 기계적이며 핏트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없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와 악보와 가수들간의 상호 작용에서 발생하는 드라마가 결여되었다. 따라서 공연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적 통제가 예술적 감각을 결여한(내 경험에 의하면 감정의 힘을 음량과 자주 혼동할 정도로) 기술자들에게 맡겨진 것 같다. 난 한국에서 연출은 하지 않지만 연출가로서 나의 우려는 만약에 뮤지컬 연극을 녹음된 음악에 의존한다면 관객들이 극장에 오지 않고 CD를 사서 집에 앉아서 들으려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오늘 공연을 보고 나의 소감을 개진할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나의 의견이 다소나마 참고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게 생각할 것이다.
 

Richard Nichols.Ph.D.
Professor of Theatre
Penn State University(U.S.A.)
Fullbright Senior Research Scholar
and Visiting Professor, Sugkyunkwan University
 

리챠드 니콜스, 박사
미국 펜실바니아 주립대 연극과 교수
풀브라이트 씨니어 연구원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초빙교수
 

 
-이 공연평은 필자의 양해없이 역자의 임의로 여기에 옮기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국내의 평론가들에 의한 연극 공연평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위 평문에서 느꼈으리라고 믿지만 우리 연극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심오한 예술성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기본적인 무대 문법과 연기와 연출의 기초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위의 평문이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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