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제 8 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


김의경 작 정진수 연출
1984년 9월 14일 ~ 19
문예회관 대극장(762-5231)

 □ 대표의 글

한국인의 삶
          이근삼
 
연극의 기원은 축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인류사와 궤를 같이하는 연극의 역사 속에서 무대위에 올려졌던 수많은 연극작품들은 그 수 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를, 또 의미를 지녀왔다. 그러나 이같은 다양성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있던 축제에의 향수는 현대에 이르러 수많은 나라, 도시에서 각양각색의 연극축제를 낳았으며, 우리에게도 <대한민국 연극제> 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였고, <민중극장> 도 다섯 번째 참가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우리의 연극제는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도 겪었으며,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얘기되어지는 상황이긴 하나, 연극에의 순수한 애정과 정열을 밑바탕으로 한 꾸준한 참여만이 보다 나은 연극, 보다 나은 연극제를 향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민중극장> 의 생각이다.아직까지는 약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하더라도, 연극인 자신과 관객을 배반치 않고자 애쓰는 작업을 계속해 나아간다면, 또 그러한 연극작품이 하나하나 모아져 간다면 이 연극제라는 행사는 잃는 것 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많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이같은 연극에의 애정과 믿음이 20년 전 <민중극장> 의 태동을 가능케 했으리라.

1963년도에 창단되어 계속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다 약간의 침체현상을 보인 것이 70년대 초반이었다.
그러나 1974년 창단선배들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새 세대들은 구 연극인회관 소극장에서 <우리는 뉴헤이븐을 폭격했다.> 공연을 시발로 극단의 재기를 굳게 다짐했다. 이제 올해로 소위 재기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더욱 뜻있는 일은 본인을 비록하여, 그동안 극단의 대표직을 맡아 수고해왔던 이효영씨, 정진수씨, 박봉서씨 등도 다른 평단원과 마찬가지로 극단작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단, 침체, 재기의 20년을 거쳐오면서 <민중극장> 이 무대위에 올려놓은 작품들은 매우 다양한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일관성이 없다고도 함을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민중극장> 은 연극행위를 통해 관객에게 극적인 다양성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인간의 삶의 양태가 다양하고, 또 삶의 진실을, 의미를 꼭 어떤 것이다, 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진대 연극을 통해 부여된 삶의 순간적인 질서는 아름답게도, 슬프게도, 즐겁게도 또 냉정하게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리라. 또 그동안의 <민중극장> 의 공연작품은 번역극이 주류를 차지해 왔고, 이에 대해 한국의 한국인의 얘기를 소홀히 한다는 은근한 비판도 많이 받아왔다. 특히 요즈음처럼 "한국적(?)" 인 것이 일종의 붐을 이루고, 그러한 것만이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정확하고 바르게 그려준다는 듯한 의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번역극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감은 더욱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다운 삶이란 결국 인간다운 삶에의 지향에서 출발된다고 전제할 때 <민중극장> 은 번역극, 창작극에 대한 단순 흑백논리를 벗어나 '좋은' 작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무대 위에 올려놓을 때까지의 작업에는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이 되따른다.
연극이 타 분야의 여느 예술 보다도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생활도 꾸려나가야 한다. 따라서 연극인들이 연극만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개인 등 사회 각계각층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그간 20년을 정리해 보면서 그동안 애써온 단원들은 물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 작자의 글

잊혀진 <운명의 승리자>    김의경
 
6.25 직전 서울거리에는 <운명의 승리자 - 박열> 이란 책이 널리 선전되었었다.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배합한 강렬한 디자인에 나는 저으기 끌렸었고, 막연하게 훌륭한 분에 관한 책이라고 직감했었다. 그러나 어린 나로서는 그 책을 사기까지는 못했다.
지난 겨울 나는 관동대진재에 관한 세 번째 취재여행으로 동경엘 갔었다. 그리고 요행히도 석또우찌 하루미 라는 일본의 유명한 여류작가가 쓴 소설 <여백의 봄>을 읽게 되었다.그 것은 박열의 사상의 동지였으며 내연의 처였던 가네꼬 후미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관동대진재라는 특수한 시대상황과 그 속의 한국인이라는 피압박민족의 수난만이 나의 주관심사였으나, <여백의 봄>을 계속 읽어나가는 가운데 나의 심경은 점점 새로운 또 하나의 관심사를 만나게 되었다.

내 어릴 때의 막연한 기억 - 박열 의사가 훌륭한 분일 듯 했던 - 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과연 이 분은 우리들이 너무도 몰랐던 위대한 애국자라는 점에 경도되었을 때의 나의 기쁨.
<22년 2개월 하루> 라는 긴 세월, 그 것도 스물 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로부터 시작된 감옥생활을 이겨낸 박열 의사를 후세 변호사는 <운명의 승리자> 라고 찬양했었다. 이 것이 나의 첫번째 놀라움이다.
그러나 20년대 일제의 정계를 그처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열은, 해방 40년을 맞이하는 이 날의 우리들에게 기억되어 있지 않다. 이 것은 나의 두 번째 놀라움이다.
45년 10월 출옥 후 얼마 안되어 박열은 일본에서 신생성건설동맹이라는 정당을 발족시켰고 곧이어 대한민국 재일거류민단을 창설하여 그 첫 단장이 된다. 48년 그는 이승만내각의 일원이 되리라는 세상의 기대 속에 귀국했으나 그 것은 한낱 소문이었고, 후일에 알려진 바로는 그가 교육에 헌신하려고 했었다는 희미한 사실 뿐이다. 그는 6. 25가 발발한 직후 어느 지작없는 신문기자에 이끌려 북괴 첩보위부에 수감된다. 납북된 그는 지금까지 생사를 알리지 않는다. 아나키스트를 가장했던 한 위대한 인물은 더 이상 조국의 아픔을 모를 것이기에 차라리 그는 행복하게 죽었을 런지도 모른다고 할 것인지...
결국 그는 아나키스트의 가면을 벗지 못한 채 한 불행한 시대를 대표해서 사라져간 것이다.

갑자기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어 공연조차 못보게 되었고 연습에도 참관할 기회가 없어 안타깝다.
이 작품은 내가 미처 집필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던 것이나 정진수씨의 묘한 유도에 끌려 완성할 수 있었다. <관동대진재> 라는 나의 미래의 작품의 승산적인 셈이 긴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긴다,
이 작품을 쓰면서 여러분의 도움을 입었다.
최서면 동아 한국연구원 원장, 김후경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실장, 양희석 교수, 일본 화광대학 강덕상 교수, 신우식 서울신문사 기자, 그 밖에도 여러분이 계시다.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한가지 밝혀 둘 것은 시간 관계상 정진수씨의 극본수정 부분에 나의 뜻과 부합되지 않은 점들이 있다. 나의 불찰이긴 하지만 오해를 없애기 위해 고언한다.
 

□ 연출자의 글

먼저 표부터 팔자!정진수

 
1

그동안 몇 번의 창작극 연출을 해오면서 남의 작품을 멋대로 개작하는 파행적 연출자라는 오명(?)을 들어왔다.나의 변명인 즉 - 난 보작은 했으나 개작한 일은 없다 - 이다.
원천적으로 돌아가서 희곡은 문학이나, 연극은 공연예술이다. 곧 희곡은 글로 남아서 두고두고 재평가 받을 수 있으나 공연예술은 일회적이다. 난 공연예술에 종사하고 있다. 난 나의 일회적 작업을 위해 부족한 대로 나의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이 것은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연출자의 성역적 권리다.(이렇게 단언하고 보니 과거의 나의 주장과는 달라진 것 같다.)
희곡은 남는다. 얼마든지 개작하고 재발표의 기회도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대한민국연극제에 맞추어 제출된 초고를 완성으로 생각지 않고 갈고 다듬을 기회를 생각한다면 극작가에게는 그의 작품이 해체되어 무대에 펼쳐지는 것은 얼마나 좋은 연구의 기회인가.
상? 오, 작가답지 않은 말씀. 우리 희곡사에 길이 남을 수도 있는 기회와 한 번의 상을 타낼 기회 사이에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연극제는 최선의 워크숍이어야 한다. 재주와 기량이 아직은 부족한 우리 연극인 모두에게는 특히.
우리 다 큰 어른들이 연극제의 경연장에 자청해서 나서는 것은 자신에 넘친 나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독한 비판 가운데 나를 내맡기는 겸허함 때문일 것이다.

2

언제까지 연극을 연극인들의 희생에 맡겨야 하나? 아무리 거지같은 연극을 놓고도 그 연극이 뭐가 틀려먹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지금의 연극형편을 아는 사람이라면. 올림픽이니 진흥원이니 인심 좋은 재벌얘기는 다 남에게 떠넘기려는 얘기밖에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표 한 장이라도 팔아야만 한다. 표 한 장이라도 팔아준 사람이 연극에 대해서 비로서 한마디씩 하자.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팔지 않으면 누가 팔아주겠는가.
표를 삽시다. 표를 팝시다. 그리고나서 연극얘기 솔직하게 좀 합시다.
 

 □ 출연 □

     □ 스탭 □


박 열 / 이경영
후 세 / 박봉서
다데마쓰 / 정운봉
마끼노 / 이문수
이시다 / 박팔영
가네꼬 후미꼬 / 윤소정
니이야마 / 국미
김중한 / 김형영
김 한 / 김철리
장상중 / 최상규
최규종 / 주용만
정태성 / 이종영
이소홍 / 최은미
김광수 / 박성준
간수 1 / 최형섭
간수 2 / 홍진원
군중 1 / 이한의
군중 2 / 김상욱
군중 3 / 경효현
군중 4 / 노동호
언더스터디 / 성윤영
언더스터디 / 이연옥
 


장치 / 강경열
조명 / 김의중
음향 / 조갑중
분장 / 전예출
의상 / 이자경
무감 / 이종일
음악 / 심성훈

조연출 / 김철리
기획진행 / 우명순
공연진행 / 김선경

디자인 / 이종환
사진 / 임성규
기계 / 최성열

 

 

극단 민중극장
대한민국 연극제 참가


우리 관객들은 대개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그러나 무대 위의 인물들이 나타내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관객들의 연극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무대 위의 인간들의 삶이 슬픈 것이든 웃으운 것이든 이러한 우리 관객의 가슴에 깊숙이 와닿을 수 있는 공연을 보다 많이 선사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20년 역사의 <민중극장> 이 앞으로 더욱 더 좋은 작품을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한약품공업주식회사
     총무부장  이용우

 


수 백의 젊음이 하나 되어 뜨거운 날(프로그램의 광고)

    1984. 9. 29(토)~ 10. 1(월)

● 조용필 콘서트
● 비디오콘서트
● 쌍쌍파티
● 등반 O.L대회
● 용평가요제
● 디스코 콘테스트
● 공옥진 춤놀이
● FOLK콘서트

프로그램

● 첨단스포트 장비 전시회
● 명랑올림픽
● 스키 장비 및 사진전
● 불꽃놀이

출연진

● 조용필과 위대한탄생
● 윤형주
● 공옥진
● 김세환
● 양희은
● 김수철

● 조동진
● 심형래
● 김정식
● 해바라기
● 이명훈 그룹사운드
● 전인권 트리오
● 강은철. 정서용
● 이지혜
● 이규대

참가신청 및 문의
273 - 9341 ~ 6

참가대상 : 남 년 대학생, 일반인 가족 3,000 명
참가자 전원에게 기념품 증정
접수중

용평 리조트
서울 중구 저동 2가 24 - 1(쌍용빌딩 18 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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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극제.]1977년 제 1회부터
   
 
정진수 작, 역, 연출작품명
 정진수 연극서적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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