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제 9 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
1985. 8. 15 ~ 20(4 : 30, 7 : 30)
문예회관 대극장

민중극단 공연
<선각자여>
이재현 작  이효영, 정진수 연출

 주최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국연극협회
 협찬 : 유원건설

 
민중의 관극회원께 알립니다.
댁의 주소가 바뀌면 곧 극단(312 - 9416) 으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 프로필>

 이재현

 
1940년 평양에서 태어남
경기중고교, 서울대 사대 졸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극문학전공, 문학석사)
극단 실험극장 사무국장, 드라마센터 기획실장 등 역임)
현재 한양대학교, 서울예대 강사

 

1965년

국립극장 공모 장막희곡 당성 <바꼬지>, <바꼬지> 국립극단 공연

1966년

<해 뜨는 섬> 실험극장 공연

1967년

동아일보 공모 장막 희곡입선 <사하린스크의 하늘과 땅>
제 3 회 한국연극영화 예술상 신인상 받음 < 해 뜨는 섬>

1968년

<학마을 사람들> 각색, 극단 광장공연

1969년

제 5 회 한국연극영화 예술상 희곡상 받음 <사하린스크의 하늘과 땅>
<논개> 연극협회 합동공연
<제 10 층> 실험극장 공연

1970년

<내 거룩한 땅에> 극단 광장 공연, <몽유병자> 여인극장 공연

1971년

<신시> 실험극장 공연

1972년

제 2 회 한국예륜상 작품상 받음 <신시.
5. 16 민족상 공모 장막희곡 당선 <포로들>
<포로들>국립극단 공연
<엘리베이터> 실험극장공연, <송학정> 국립극단 공연

1973년

제 9 회 한국연극 영화예술상 희곡상 받음 <포로들>
<춘향전> 실험극장공연, <태양관측> 실험극장 공연
<성웅 이순신> 신축 국립극장 개관기념공연

1974년

<썰물> 실험극장 공연
<하늘아, 무엇을 더 말하랴> 극단 광장 공연
<병사들의 합창> 극단 신협 공연

1976년

<한밤의 산책> 실험극장에서 작. 연출로 공연
중앙일보 창간기념 천만원 고료 장막희곡 입선 <대한>
<대한> 민중극장에서 작. 연출로 공연
<북향묘> 국립극단 공연

1977년

<비목> 여인극장 공연, 희곡집 <비목> 출간

1978년

<멀고 긴 터널> 현대극장 공연 제 2 회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 받음

1979년

<님의 침묵> 공연, <화가 이중섭> 작. 연출로 실험극장에서 공연

1983년

<적과 백> 제 7 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 (극단 성좌) 대상 수상


민중극단 워크숍 공연


버지니아 그래이의 초상 (1 막)
구엔돌린 퍼어슨 작. 김철리 지도

1985년 8월 20일 오후 1 시, 2 시 ( 2 회)

문예회관 대극장

출연

황계호, 김종미, 이수애, 장승미, 한지영, 윤희철,
윤승철, 이경미, 이미경, 김주숙, 최경숙, 윤정원


※ 이 공연은 무료입니다. 티켓 없이 아무나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캐바레" (Cabaret)


라이자 미넬리를 하루아침에 브로드웨이의 스타로 만들어 준 <캐바레> 는 미국 뮤지컬 사상 가장 이색적인 작품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하여 나치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미국인 소설까와 카바레 댄서와의 잿빛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은 뮤지컬은 공허하기 짝없는 하룻저녁의 오락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을 씻어주기에 충분할 만큼 문학적인 향기가 가득한 작품이다.
밝고 경쾌한 뮤지컬이 아닌 어둡고 우울한 뮤지컬 <캐바레>의 묘미는 볼 때마다 뒤에 기억되는 맛이 훨씬 짙게 전해온다.
하반기 초에 공연예정
 


아듀 ~ 앵콜!

Musical

아가씨와 건달들

1985. 8. 26 ~ 31.  3 : 30,  7 : 30

세종문화회관 별관
 

 

모든 공연에 대한 문의는 극단 ( 312 - 9416) 으로 해주십시오.

캐스트

박봉서 / 이광수
1948년생. 충남 부여산. 중앙대 졸업

수렵사회, 베니스의 상인, 쌍둥이의 모험, 꿀맛, 대한, 방화광, 노부인의 방문, 사랑을 내기에 걸고, 연인 안나,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이듬해 이맘때, 검찰측 증인, 변신, 마피아, 선인장 꽃, 심판, 연인과 타인, 세빌리아의 이발사, 악마의 제자

윤주상 / 증인 1
1949년생, 서라발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생일파티, 의자들, 안티고네, 만리장성, 오셀로, 뜻대로 하세요, 안네의 일기, 죄와 벌, 산넘어 고개넘어, 동물원 이야기, 지난 여름 갑자기, 학이여 사랑일레라, 쥐덫, 언챙이 곡마단, 별을 수놓은 연인, 베니스의 상인, 진짜 서부극, 심판, 착한 사람 등 70여 편

 정운봉 / 증인 2
1950년생

비. 세 발 자전거. 만찬에 온 별난 사나이. 열 개의 인디언 인형. 아마데우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진짜 서부극.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 심판. 착한 사람. 꿀맛. 아가씨와 건달들

박팔영
1954년생. 충남

아가씨와 건달들. 연인 안나. 선인장 꽃. 심판. 착한 사람. 식민지에서 아나키스트. 보석상. 적과 백. 어떤 사람도 사라지지 않는다.해마

최은미
1963년생. 서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아가씨와 건달들.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 선인장 꽃. 최후의 뜨거운 연인들. 연인 안나. 신데렐라

<스탭>  

조 명 / 정수환.  분 장 / 김기진.  의 상 / 이자경.   음 향 / 이 경우. 조갑중.  조연출 / 조은선

 
 춘원 이광수의 주요일지
 

 1892 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

1902 년

부모 호열자로 사망
동학의 박대령집에서 기거하며 문서전달일을 맡음

1905 년

서울 소공동학교 일어교사

1906 년

동경 대성 중학 입학

1907 년

명치학원 중학부 3학년 보결입학, 이 곳에서 도산과 육당을 처음 만남

1908 년

육당이 창간한 <소년> 지 일을 돕고 여름방학 맞아 일시 귀국하여 백혜순과 결혼

1909 년

처녀작 <사랑인가> 탈고

1910 년

오산학교 교원으로 부임

1913 년

오산을 떠나 만주 여행
시베리아 치따에서 <정교보> 발행을 도움

1914 년

8월 귀국

1915 년

김성수의 도움으로 조도전 대 철학과 입학

1917 년

1월부터 '매일신보' 에 <무정> 연재시작

1918 년

10월 의전을 졸업한 허영숙과 북경으로 애정도피, 12월 윌슨의 민족자결에 감화를 받아 귀국.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발의 하고 동경으로 감

1919 년

2월 '2.8 독립선언' 기초
독립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상해로 감
5월 도산과 만나 평생의 교분을 맺고 상해임정에 참여 임정사료 편찬위원, 외무위원 및 '독립신문' 사장 겸 주필을 맡음

1920 년

8월 임정의 재정난으로 사료편찬위 해산, '흥사단' 가입

1921 년

2월 춘원의 위독소식을 듣고 허영숙 상해에 옴
5월 귀국. 불기소 석방. 변절오해를 받자 금강산 행
도산으로부터 국내에 흥사단 지부조직 밀명 받음

1922 년

'개벽'지에 '민족개조론' 발표, '수양동맹회' 조직
'동아일보' 입사, '재생' 연재

1924 년

문예지 '조선 문단' 주재, '동아일보' 에 사설 '민족적 경륜' 발표

1925 년

'재생' 연재중 척추 카리에스로 대수술을 받고 정양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

1929 년

병 재발, 치료후 '동아일보' 복직

1932 년

도산 체포 수감됨

1933 년

'조선일보' 부사장에 취임, <흙> 연재

1934 년

장남 봉근 사망, 금강산 방랑, 법화경에 몰입, 홍지동에 산장 신축

1935 년

도산 가출옥, 도산과 함께 여행

1936 년

남차랑 총독부임과 함게 문화통치 종식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 구속. 12 월 병보석으로 출옥

1938 년

도산, 재수감, 병보석후 사망, <사랑> 발표

1939 년

<무명> 발표, '황군위문작가단' 결성에 참여. '조선문인협회' 회장에 선임

1941 년

태평양전쟁 발발, 창씨개명, '수양동우회' 사건 전원 무죄 판결

1942 년

 11월 제 1 회 '대동아 문학자 대회' 참석

 1943 년

 3월 '조선문인 보국회' 참여

1943 년

12 월 명치대 강당에서 육당과 함께 징병권유 연설을 행함

1945 년

8월 사릉에서 해방을 맞음

1946 년

5월 허영숙과 법률적으로 이혼
6월 봉선사에 들어가 수도생활

1947 년

효자동 자택으로 돌아온

1949 년

'반민특위' 체포, 불기소처분 받음

1950 년

6. 25 때 납북 됨

 

 연출노트

 
춘원의 반민특위에의 체포, 조사과정을 지켜본 어느 인사는 춘원의 훼절을 안타가워하며 이렇게 통탄했었다.
차라리 상해에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차라리 붓대를 꺾어버렸거나!
차라리 서대문 형무소에 있을 때 죽어버렸거나!
차라리 보석으로 의전병원에 입원했을 때 죽었거나!
차라리 금강산으로 휴양갔을 때 깊숙이 들어가 중이나 되었거나!
이 말을 인용하는 뜻은 이 연극을 만들면서 역사에 대하여 얻은 내나름의 느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은연중 과거 역사에 있었던 일들을 불가피했던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이번에 춘원의 행적을 더듬는 가운데 가장 절실하게 느껴진 것은 그 암담하고도 강압적인 시대속에서도 그가 친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자유가 주어져 있는가.
그의 모든 행동은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 나 역시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새삼 책임감이란 것을 되느낄 수 있었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나의 행동이란 없어 보인다.
동시에 이 연극을 하면서 인간 춘원에 대한 커다란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게는 참으로 특이한 면이 있어 보였다. 그는 한번도 행동을 주저한 적이 없다. 그 보다도 훨씬 못한 인물들이 단지 한 번의 부작위에 의하여 역사에 애국자로 기록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였는데 반하여 춘원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김윤식씨의 이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 항상 행동으로 줄달음쳤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서 그에게서 거인다운 풍모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한가지 이 연극을 하면서 느낀 것은 춘원만큼 우리 최근세사에 유명한 인물도 드물건만 그의 행적에 대한 충실한 기록마저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부족하고 단편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춘원에 대한 허구만은 단정적, 편파적 견해들이 나올 수 있었음에 대하여는 놀라움과 씁쓸함이 따른다. 그러나 '문학사상' 에 연재중인 김윤식씨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 는 필자특유의 해설을 접어둔다면 내가 접한 가장 충실한 고찰이었다.

춘원에 대한 가장 큰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가 우리 민족의 열등성을 입증하려한 일제의 식민지사관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정신을 가진 인물치고 자기가 살았던 시대와 사람에 대하여 비관을 말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던가. 그들은 한결같이 시대의 반역아였었다.
나는 결코 춘원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민족이 진정 자유와 독립을 구가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오늘 이 시대를 돌아보아도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뿐이다.

이 연극은 이재현의 원작을 토대로 했으나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자의적인 윤색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자료에 의하여(그 자료들의 신빙성은 알 길이 없으나) 재구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정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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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극제.]1977년 제 1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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