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국립극단 제 192회 정기공연 세계명작무대 시리즈

             "햄 릿"        

        W.셰익스피어 작

        번역 / 연출 정진수(프로그램에 실린 글)

        
        국립극단
        The National Company
        공동주최 : 국립극장,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2001. 9. 7 - 9. 16(평일 19:30 토, 일요일 16:00)

연극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국립극단은 1950년 국립극장의 설립과 동시에 발족했으며, 1973년 현 장충동 국립극장의 건설과 함께 현 체제로 개편되었다.

전 단원이 전문 연극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립극단은 일반극단이 시도하기 어려운 대작과 세계적 고전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창작극의 개발. 진흥에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1990년 창작개발 문화가족을 결성하여 파격적인 원고료 책정과 집필계약제 및 우수창작극 공모제 등 일련의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또한 찾아가는 국립극장이라는 기치 아래 왕성한 지방순회공연을 펼치고 있으며 동해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매년 여름 동해에서 여름연극 캠프를 실시한다. 올해에는 예학협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예술 종합학교 연극원과 함께 신작희곡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좋은 창작희곡 개발에 힘쓰고 있다.

 창단공연으로 <원술랑>(1950)을 공연한 이래 191회의 공연을 가졌다. <성웅 이순신>(1973), <남한산성>(1974), <무녀도>(1979), <세종대왕>(1981), <나래섬>(1983), <내일 그리고 또 내일>(1985), <비옹사옹>(1986), <꿈하늘>(1987), <사로잡힌 영혼>(1991), <홍동지는 살어있다.>(1993), <피고 지고 피고 지고>(1993), <눈꽃>(1995), <무주별곡>(1997), <아노마>(1999), <마르고 닳도록>(2000) 등의 창작극과 <베니스의 상인>(1964), <세 자매>(1967), <천사여 고향을 보라.>(1978), <말괄량이 길들이기>(1988), <오이디프스 왕>(1990) 등의 세계 명작들을 무대화 하고 있다.

연출의 말
      Introductions
     
 정진수(연출가, 성균관대 교수)


  두어 달 전 미국의 연극전문지 "American Theatre" 는 올해를 "햄릿의 해"(Year of Hamlets)라고 일컬으며 올해에 유난히 세계 도처에서 "햄릿"이 공연되고 있음을 전해 주고 있다. 이미 유명해진 피터 브룩의 "햄릿"은 미국, 일본 등지를 누비며 화제를 부렸고 올해 에딘버러 연극제에서는 독일의 페터 자덱이 연출한 무려 4시간이 넘는 "햄릿"공연도 주목을 받았다.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물론 글로브 극장을 위시하여 여러 곳에서 공연, 재공연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오레곤 셰익스피어 페스티발을 비롯하여 도처에서 "햄릿"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햄릿"이 공연되는 예는 흔치 않다. 있더라도 연출가의 새로운 해석능 앞세운 실험적 공연이 간혹 행해지고 소위 '정통' 공연은 어쩌다 한번씩 보여졌을 분이다. 이번에 국립극단에서 모처럼 "햄릿"을 레퍼터리로 선정했는데 이 것이 사상 처음하는 "햄릿"공연이라고 할 정도이다. 국립극단이 처음 "햄릿" 공연을 감행(?)하면서 내게 연출을 의뢰 했을 때 이미 그 것은 위에 말한 '정통' 공연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정통공연의 의미도 잘 모르지만 실험적 공연은 더 더욱 나의 역량과 취향 밖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정통 공연이란 연극의 전문가(그 것도 고도의 지성으로 무장한)가 아닌 평범한 교양인이라면 감상과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공연을 뜻한다.

  "햄릿"은 세계 문학사상 단일 작품으로는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이는 곧 작품 해석의 여지가 지나치게 풍부하여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품의 다의성을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의 일부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가장 훌륭한 셰익스피어 공연은 가장 셰익스피어적이면서 가장 우리 시대적이어야 한다는 얀 코트의 말에 공감하였다.
그래서 난 셰익스피어가 만약에 이 시간에 서울에 살면서 "햄릿"이라는 작품을 쓰기로 작정하였다면 어떻게 썼을까,하는 가정하에서 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우선 번역 작업에서부터 이 같은 생각을 적용했다. 소위 원작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충실한 번역이 아니라 우리 관객에게 작가의 의도와 표현방식이 잘 전달될 수 있기 위한 번역에 힘썼다. 따라서 pun(동음이의), alliteration(두운)이나 topical allusin(시사적 비유) 등과 같은 원작의 언어적 표현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으며 당시의 관행이랄 수 있는 장광설은 축약되었다. 무엇보다도 극적 타당성과 함께 관객이 들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옮기기에 힘썼다.

  원작대로 상연하면 6시간 남짓된다는 이 작품을 우리 관객을 위해서는 2시간 30분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군데군데 삭제를 하였으나 아마도 최근에 이 작품을 정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디를 줄였는지 눈치 채기 힘들 것이다. 눈에 띄는 대목이라면 1막 1장을 생략했다는 것과 4막 4장과 5막 1장을 합친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난 이 작품을 1부와 2부로 나누고 중간에 휴식을 두었고 시작과 끝을 왕궁의 어전으로 잡아 대관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나게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혈투로 장식하는 대단원 직전에 포틴브라스가 등장하는 바닷가 광야의 장면이 오게하여 작품의 주제가 이 대목에서 부각되도록 하였다. 여기서 햄릿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인 포틴브라스의 군대를 만나고 레어티스를 만나며 오필리아의 죽음을 보고 묘지기를 만나 삶의 덧없음을 확인한다. 마지막 장면은 다만 필연적 귀결이 되게 하였다.

  사람마다 해석은 달라도 "햄릿"은 지성의 비극이라는 점에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왜 복수를 지연했는가에 논란의 초점이 모여지지만 그 것이 행동의 결여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행동에 앞서 확신을 갖고 싶어하는 햄릿(요즘의 지성인은 오직 자기 행동의 정당화를 위해서만 사고하지 않는가)에게서 참 지성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런 뜻에서 햄릿은 오이디프스와는 사뭇 대조적인 인물이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결과는 동일하다. 그들은 비록 선택은 달리 했어도 (하나는 질주하고 하나는 주저했으나) 그들의 선택에 의해 파멸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며 그들의 파멸을 통해서 인생과 우주의 불가해함에 대하여 깨달음을 남겨 준다.

  애당초 11월 중순에 소극장에서 공연키로 되었던 것을 당겨서 9월초 대극장으로 옮기는 통에 올여름 복더위를 쫒기듯이 작업에 임했으나 모처럼 대극장 무대를 만나 연출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대 끄미기에 가장 고심했는데 무대 디자인을 맡은 송관우씨와 의상 디자인을 맡은 이신혜씨 및 국립극장의 리쏘스와 스탭진이 있었기에 어느 만큼 가능할 수 있었다. 모처럼의 기회를 안겨준 국립극단의 정상철 단장을 위시한 단워 여러분에게 감사하며 작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이호재 선배를 비롯한 출연진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음악의 선곡을 도와주신 서울 음대 서우석 교수께도 감사를 표한다.
  이번 작업의 즐거움을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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