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연극의 이해   
Understanding Drama & Theatre
정진수 / 김동욱 공저
 

 

       제 1 부 희곡과 공연의 이해 : 정진수

    1. 희곡과 공연의 특성.........................9

    2. 희곡과 공연의 본질.........................17

    3. 희곡의 요소....................................36

    4. 희곡의 형태....................................51

    5. 희곡과 공연의 양식..........................60

    6. 공연의 요소.....................................66

    7. 희곡과 공연의 비평..........................90

    8. 현대연극의 의미..............................103

 

 4. 희곡의 형태


희곡의 형태(dramatic type 혹은 form, genre)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진다. 비극(tragedy), 희극(comedy), 정극(melodrama), 소극(farce)들이 그 것이다. 이 중에서 비극과 정극은 진지한(serious) 인간 행동을 다루고 희극과 소극은 우스꽝스런(humorous) 인간행동을 다룬다. 그러나 비극과 희극은 성숙한 극 형태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정극과 소극은 기본 형태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 둘을 따로 묶어서 기본 형태로부터 설명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희곡의 형태를 얘기할 때 위에 든 네 가지 형태 이외에도 무수한 군소 형태(minor forms)들이 있지만 이 것들은 위에 든 주요 형태(major forms)들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만큼 따로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피하기로 한다. 그러나 비극과 희극의 절충형인 희비극(tragicomedy)은 특히 현대극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현대의 희비극 형태를 가리켜 흑색 희극(black comedy) 또는 어두운 희극(dark comed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 같은 말들은 희극의 특수한 형태를 지칭하는 형태 용어(generic term)라기 보다 현대 희곡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한 설명적 용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중요성에 비추어 현대 연극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에서 따로 논의하기로 한다.
이 장에서 희곡의 '형식' 이라는 말 대신에 굳이 '형태' 라는 번역어를 사용한 것은 가급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흔히 희곡의 형식이라고 말할 때는 꼭 희곡의 형태 뿐 아니라 언어, 양식 등을 모두 포괄해서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내용(content)이라는 말에 대비되는 말로 형식(form)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그 의미가 넓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굳이 형태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 것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해 둘 것은 희곡의 형태를 위의 네 가지로 대별했으나 어느 구체적인 희곡 작품이 반드시 이 네 가지 형태 중의 어느 하나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극작가 자신이 의식적으로 극 형태를 선택해서 작품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형태의 특징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있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극형태의 분류 자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일부 극작가는 자기의 작품을 막연히 희곡(drama 또는 play)이라고만 밝히는 경우도 있다. 특이 1960년대 이후 현대 희곡 작품들은 형태에 따른 분류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농후해져서 극 형태에 대한 관심 자체가 약화되었다. 그렇더라도 어떤 희곡이든지 불가피하게 어떤 형태이건 갖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래서 전통적인 형태의 분류를 거부하는 일부 극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형태에 대하여 '반극(anti-play)'이라거나 '비극적 소극(tragic farce)' 등의 독창적인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이 책의 맨 앞에서 "예술은 규범에 저항하다." 라는 말을 인용했지만 예술 작품은 이론적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희곡 문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이 같은 형태상의 구별이 지어진 것에 불과하다.
 

 1) 기본 형태 : 정극과 소극


여기서 정극이란 말은 저자가 편의상 'melodrama'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쓴 것임을 밝힌다.  '정극' 이라고 쓰는데 공교롭게도 조용한 연극이란 뜻의 '정극(static drama)' 그리고 '정극(legitimate drama, 정통극이란 뜻)' 과 우리말로 표기할 때 똑같아서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 보다 더 적당한 번역어가 나올 때까지는 그대로 '정극' 이라고 쓰기로 하겠다. 또 소극은 한자로는 '소극' 이라고 쓰는데, 학자들 가운데는 소극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희극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키기도 하지만 희곡의 형태를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여기서는 따로 분류하였다. 정극과 소극을 비극과 희극에 비교하여 저급한 극 형태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으나 예술 형태의 우열을 가른다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다. 정극과 소극은 저급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단순함 속에 연극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기본 형태의 공통점을 말하기에 앞서 둘의 차이점을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차이점은 비극과 희극의 차이점과도 일치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기로 하자. 앞에서 정극은 진지한(serious)행동을, 소극은 우스꽝스런(humorous) 행동을 다룬다고 했는데, 진지하다는 말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serious' 란 영어 단어는 사용하는 경우에 따라 두 가지 다른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학을 가리켜 'serious literature' 라고 하면 그 작품이 단순히 대중 오락(popular entertainment) 작품이 아니라 진지한 문학작품, 곧 순수문학작품이런 뜻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말과 행동을 가리켜 'serious' 하다고 할 때에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라는 뜻으로 진지하다는 의미가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집채만한 호랑이를 보았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Are you serious?" 라고 묻는 것은 농담이 아니고 진담이냐는 뜻이다. 또 우리는 'serious' 하다는 말을 엄숙하다거나 심각하다거나 또는 침통하다거나 하는 등의 장중하고 비극적인 뜻으로만 해석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나 담담하게 평상적인 기분으로 진실을 말하는 태도 역시 'serious' 하다고 표현한다.
이 같은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가령 정극은 인간의 'serious' (농담이 아니란 뜻에서)한 행동을 다루지만 'serious'(순수하다는 뜻에서)한 play는 아니기 때문에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순수극과 통속극의 문제에 대하여는 현대연극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serious' 라는 말이 'houmorous'라는 말의 반대어로 쓰였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이번에는 'humorous action'은 무엇을 뜻하는가도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데 여기에 대하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의 정의가 가장 도움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이란 파괴적이거나 고통스럽지 않은 결함이나 추함에서 나온다(Ludicrous consists in some defect or ugliness which is not painful or destructive)"고 정의했는데 어떤 사건이나 인물 또는 생각에서 정상(normality)을 이탈한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웃읍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상으로부터의 이탈이 심각한 것일 때에는 웃을 수가 없다. 가령 멋쟁이 숙녀가 겨울철 얼음판에서 미끄러져서 약간 엉덩방아를 찧었다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어댔겠지만 그 숙녀가 미끄러져서 두개골이 파열됐다면 아무도 웃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정상으로부터의 이탈은 '부조화스럽다(incongrous)' 는 느낌을 주게 되는데 이 것이 웃음을 유발시킨다고 믿어지고 있다.
이 같은 정극은 진지한 행동을, 소극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다루는 점에서 다르지만 그밖에 둘은 중요한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정극과 소극은 모두 인물이나 사상보다는 극의 행동, 사건 또는 상황에 주로 의존한다. 이들 형태는 희곡의 요소 가운데 구성(plot)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같은 희곡은 희곡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극 행동을 탐닉하기 때문에 이 둘은 가장 기본적인 극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건의 진행은 논리적인 필연성에 의지하기 보다 대부분 우연에 의하여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가기 일쑤이다. 따라서 관객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나 그 사건의 의미를 따지기 보다 사건 자체의 재빠른 변화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들의 행동에 각별한 배후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들 극 형태를 순수한(pure, serious하다는 뜻의 순수가 아니라) 극 형태라고 일컫게 만들어 준다. 행동 자체에서 오는 재미만을 추구할 뿐이지 거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의미를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형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따라서 지극히 단순한 평면적인 인물들이기 십상이다. 그들은 선인 또는 악인으로 확연히 구별된다. 작가는 물론 항상 착한 사람 편이기 때문에 선인이 주인공이 되고 악인이 상대역 또는 조역 인물(minor character)이 되지만 관객의 흥미의 초점은 선인 보다는 악인 쪽에 모이기 마련이다. 선인은 다만 악인으러부터 탈출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들 뿐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수동적 인물에 머문다.
그러나 극의 결론은 항상 선인이 보상받고 악인이 징벌받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특히 정극의 결말을 가리켜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 입각한 해결이라고 하는데 곧 냉엄한 현실 경험과는 동떨어지게 천진난만한 세계관을 심어주는 안이한 처리라는 뜻으로 깎아 내릴 때 쓰는 표현이다. 대체로 우리가 접하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은 거의 소극에 속하며 진지한 행동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극은 정극에 속한다. 흔히 정극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다루는 연극만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어서 소위 '멜로물'이라는 저널리즘의 용어가 횡행하지만 멜로드라마의 '멜로'의 어원은 '음악'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사랑과는 무관한. 정극은 남녀의 사랑 뿐 아니라 서부극, 활극, 탐정극, 괴기극, 공상과학극 등 모든 통속극 형태가 다 포함된다. 앞에서 열거한 특성들을 갖춘 모든 극형태는 다 정극에 속한다.
정극은 진지한 행동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극과 유사하지만 대체로 극이 '행복한 결말(happy cnding)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희극과 유사하다. 그러나 실상 모든 비극이 '불행한 결말(unhappy ending)을 가지고 모든 정극과 희극과 소극이 행복한 결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희곡이 행복한 결말을 가졌는가 아니면 불행한 결말을 가졌는가는 그 희곡의 형태를 식별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논리적으로 따져도 극의 결말 부분만을 가지고 그 극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두 형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체적인 사고(independent thinking)에 의하여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인습과 통념과 상식에 의하여 기계적.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두 형태의 작가들은 앞에 말한 인간행동의 여러 단계들 중에서 주로 신체적 행동과 사회적 행동을 재료로 삼아 관객들에게 소박하고 단순한 정서적 체험을 안겨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2) 성숙한 형태 : 비극과 희극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앞에서 말한 정극과 소극의 차이와 같으면서 또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비극은 인간행동의 모든 단계를 다 재료로 삼을 수 있지만 희극은 인간의 윤리적 행동은 문제 삼지 않는다. 희극이 윤리적 행동까지를 다룬다면 희극의 행동은 'serious' 해져서 이미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 되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희극은 그 자신이 희극으로 남아 있기 위하여 극의 행동이 윤리적인 문제로 번져 나갈 위험이 있으면 즉시 편법(expediency)을 사용하여 교묘하게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좀 장황한 예를 들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듬해 이맘때(Same Time Next Year)>라는 통속 희극에서 작가는 20년에 달하는 한 기혼 남녀의 밀회를 그리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 같은 상황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만한 상황이지 가벼운 웃음거리가 되기에는 대단히 많은 어려움이 따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어떻게 극 행동이 'serious' 하게 변질되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가의 예를 찾아보기로 하자. 남편에게는 샌프란시스코의 신부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정부를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온 여자가 남자에게 남편으로부터 고통을 당한 얘기를 호소한다. 이에 분개한 남자는 잠시 자기의 처지를 잊고 그 여자의 남편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고 아내를 학대한 것을 꾸짖는다. 미지의 사내로부터 난데 없이 전화로 질책을 받은 남편은 마침내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묻기에 이른다. 남자는 이 질문에 당황한다. 만일 여기서 신분을 밝혔다가는 20년 간의 밀회가 등통이 날 판이다. 관객도 이 순간 긴장한다. 갑자기 희극이 비극이 되어 버릴 것인가, 하는 위기감이 감돌 게 된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는 전화에 대고 "나는 당신 부인의 담당 신부요." 라고 둘러댄다. 그 순간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지며 위기는 모면된다. 희극은 이렇게 심각해질 위기가 여러 번 있지만 작가는 그 때마다 편법을 사용하여 교묘히 빠져나간다.
이 같은 희극은 윤리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피해 다니지만 소극처럼 아무 의미 없는 행동 자체에서 오는 재미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희극은 윤리적인 문제는 피해 다니지만 현세적인 사회 정의의 문제는 날카롭게 파헤친다. 희극의 최상의 무기는 풍자(satire)이다. 아리스토파네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훌륭한 희극 작가들은 당대 사회의 모순과 비리와 부조리를 신랄하게 파헤쳐서 비판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희극의 주요한 기능을 교정의 기능(corrective function)이라고 말하는 뜻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반면에 비극은 인간 행동의 모든 단계를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인간 행동의 궁극적 동기인 윤리적 행동을 정면에서 다룬다. 비극은 인생과 우주에 대한 모든 기성적 관념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되묻는다. 비극의 주인공은 독자적인 사유(independent thinking)에 의하여 인생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따라서 비극의 주인공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보통 사람보다 우월한 인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성인처럼 완벽한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완벽한 인간은 내면의 갈등이 없기 때문에 파국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탁월하게 착하거나 정당해서는 안 되고, 그러면서도 그의 불행은 악덕과 패륜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수나 나약함에 의하여 빚어지는 인물(a man who is not eminentle good and just, yet whose misfortune is brought about not by vice or deprsvity, but by some error frailty)"이라고 정의했는데 어떤 실수나 나약함이 곧 비극적 결함(tragic flaw)을 이룬다.
비극의 주인공은 그의 비극적 결함 때문에 그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에 의하여 자신의 불행을 초래하는 행동을 저지르게 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징벌을 감수한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잘못이라 할지라도 파멸을 당하여 무의미하게 쓰러지지는 않는다. 그는 스스로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통하여 인생에 대한 보다 높은 차원적 인식(recognition)에 도달하는 만큼 그의 파멸은 비관적이고 패배적인 것이 오히려 낙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비극의 주인공의 죽음을 가리켜 '죽음속의 승리(triumph in death)라고 말한다.
따라서 비극은 결말이 주인공의 불운으로 끝난다는 점 때문에 얼핏 비관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비극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는 낙관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의 효과(tragic effect)는 관객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는 대신에 고양미 또는 앙양감(sense of elevation 또는 exaltation)을 안겨준다. 이 것은 정극이 단지 비애(pathos)를 안겨 주는 것과 구별된다. 이 같은 정극의 체험을 pathetic experience' 라고 하는데 이는 불운을 당한 주인공에게 느끼는 동정심이라는 점에서 비극과 공통되지만 그 동정심은 관객이 자기 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베푸는 값싼 동정심에 불하다. 그러나 비극의 체험 곧 'tragic experience'는 같은 동정심이라 하더라도 관객이 자기 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바치는 동정심으로 그 안에는 외경심(sense of awe and respect)이 뒤따른다.
이 처럼 비극은 현세적인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인 영원한 문제를 다루고 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희극과는 다르지만 이 두 형태는 정극과 소극과는 다른 공통점을 가진다. 이미 위에서 부분적으로 설명되었지만 이 두 형태는 상황이나 사건의 전개 보다 인물이나 사상에 더 큰 비중을 두며 극행동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의하여 전개되며 등장인물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능동적인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둘이 전달하는 의미의 차원은 다르지만 관객은 이들 형태의 등장인물의 행동을 통해서 일반적 진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인물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을 했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는  보편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5. 희곡과 공연의 양식

 
희곡과 공연의 양식(style, mode 또는 fashion)은 특징적인 표현과 방법을 말한다. 먼저 희곡의 경우를 예로 들면 형태가 같아도 양식은 다를 수 있다. 의상에 비교하자면 바지, 저고리, 외투, 치마 같은 것들이 형태라고 한다면 똑같은 치마라도 전통적인 한국식 치마에서부터 서양식 미니 스커트 롱스커트니 하는 등속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것들이 말하자면 치마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희곡의 양식은 작가 개인에 따라서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 변천할 수도 있다. 앞의 것을 개인적 양식(individual style)이라고 한다면 뒤의 것을 시대적 양식(period style)이라고 한다. 가령 같은 그리스라는 시대적 양식을 공통적으로 가지면서도 아이스킬로스의 비극과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 비극의 개인적 양식은 서로 매우 다르다. 또 같은 시대에서도 각 민족은 그 민족 특유의 양식을 개발해 놓고 있기 때문에 민족적 양식(national style)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공연의 양식도 개인에 따라 나라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17, 8세기에는 원래 쓰여진 희곡의 양식을 무시하고 그 시대의 양식인 신고전주의 방식에 의해 공연되었고 또 19세기에는 낭만주의 방식에 의해 공연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쓰여지던 영국의 엘리자베스조 시대에는 희곡과 공연의 양식이 일치했지만 그 시대를 지나면 연극에 대한 관념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공연의 양식이 바뀜에 따라 과거의 희곡을 공연할 경우 그 시대의 공연 양식에 알맞도록 뜯어고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희곡이 쓰여져 나오지만 과거의 희곡작품을 공연할 경우에는 그 시대의 양식에 맞도록 희곡을 고치는 일이 관행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희곡이 쓰여진 시대의 공연 양식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생겨나 소위 'authentic production'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현대적 공연술을 가미한 절충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희곡과 공연의 양식은 개인에 따라, 나라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서 변해 왔는데 무엇보다도 시대적 양식이 가장 큰 변화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서양 연극의 양식에 있어서의 시대적 변천의 양상을 잠시 도식화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제시주의(presentationalism) 또는 비환각주의(dis-illusionism)의 연극


서양연극사의 첫 페이지인 고대 그리스의 연극은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으며 이 시기에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 등 3대 비극작가와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를 배출하였다. 극문학 뿐 아니라 연극 공연에 있어서도 매년 3월 아테네에서 열리는 도시 디오니소스 제전(City Dionysia)을 통하여 비극 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그리스의 연극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연극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1만 5,000 명 이상을 수용하는 야외 노천 극장에서 주간에 태양 광선 아래에서 행해진 그리스의 연극은 오늘날과 같이 실내 극장에 사실적인 무대 장치를 세우고 인공 조명 수단에 의지하여 연극이 마치 '실제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착각(illusion of real life)'을 불러일으키는 소위 환각주의(illusionism)의 연극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스 뿐 아니라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10 ~ 15 세기)와 16세기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시대까지의 연극은 환각주의와는 반대되는 비환각주의의 연극으로 공연의 방법을 제시주의(presentationalism)라고 부른다. 제시주의란 문자 그대로 연극을 꾸밈없이 연극으로서 제시해 보여주는 방식을 말하는 데 환각주의가 연극을 연극이 아니라 마치 현실인 양 속여서 보여주려는 태도와 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제시주의의 연극에서는 무대장치 같은 것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으며 인공조명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서 장소와 시간의 묘사도 대사 가운데 삽입하여 소위 '말에 의한 장식(spoken decor)'에 의존했다. 가령 배우가 등장하여 "오, 이 칠흙 같은 어둠이여!" 라고 말하면 극장은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지금이 한밤중이라고 알았으며 또 배우가 텅 빈 무대 위에 등장하여 "잘 있었느냐, 이나코스의 강물이여!" 라고 말하면 여기가 이나코스의 강변임을 알 게 된다. 이 같이 제시주의의 연극에서는 많은 부분을 관객들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표현한다.
연극의 대사도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구어체의 산문이 아니라 운문으로 쓰여져서 실제로 사람들이 대화하는 느낌을 주기 보다 시를 낭송하는 것과 같은 인위적인 느낌을 주게 된다.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도 실제 인생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며 가면을 착용하는 등 무대 위에 등장한 배우들이 실제 인간으로 보여지기 힘들다. 배우들의 연기도 오늘날 영화나 TV에서 처럼 자연스러운 실생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과장된 인위적인 동작에 주로 의존했다. 특히 그리스나 로마처럼 1만 5,000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대규모 야외 극장에서는 생활적인 동작은 어차피 객석에 전달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 시대의 연극은 실생활과는 무관하게 당대의 연극적 관약(dramatic convention)에 의존하여 행해졌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도 실제 인생에서처럼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주고 받기 보다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하여 대사를 던졌다. 따라서 관객들도 연극을 관람하면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 인생이라고 착각하고 정서적 몰입(emotional involvement)을 하는 대신 연극을 연극으로 의식하면서 감상한다.
 

 2) 재현주의(representaionalism) 또는 환각주의(illusionism)의 연극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부터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예를 되살리려는 인본주의(humanism) 운동이었는데 고전 문예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서양의 근대를 새롭게 일구어낸 문예운동이기도 했다. 연극에서도 새로운 과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실내극장이 지어지기 시작하고 무대술이 발달하게 된다. 실내극장은 오늘날까지 극장형태의 대종을 이루어 오고 있는 프로시니엄(proscenium)극장이 생겨났는데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고 관객은 프로시니엄 안쪽의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형태의 극장이 출현하게 되므로서 이제 연극은 관객이 무대를 3면에서 에워싸고 함께 참여하는 형식에서 관조하고 바라보는 연극으로 바뀌게 된다.
프로시니엄 극장의 등장과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난 원근화법(perspective drawing tecnique)을 응용한 무대장치술이 개발되어 종전처럼 '말에 의한 장식' 이 아니라 장소의 설명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촛불과 램프 등의 인공 조명 수단을 이용하여 실내 극장을 밝히고 무대 위에는 평면에 입체감이 나도록 원근화법에 의한 그림을 그린 배경막을 설치하여 연극 속의 때와 장소를 어느 만큼 실감나게 표현해 주므로서 비로서 연극은 환각주의의 시대로 접어든다. 연극 무대가 실제의 인생을 사실감 있게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 이 같은 공연 방식을 재현주의(representationalism)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르네상스 운동이 전 유럽으로 파급되어 17세기 이후 서양연극은 환각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17, 8 세기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를 거쳐 19세기 낭만주의(Romanticism) 시대에 이르기까지 연극의 환각주의는 더욱 고조되지만 19세기 말 사실주의(realism)의 대두와 함께 열리기 시작한 현대연극(modern drama & theatre)의 시대 이전까지 연극의 환각주의는 아직 불완전한 것이었다. 무대술은 원근화법에 의지한 소위 회화적 사실주의(pictorial realism)로 말미암아 환각주의를 실현하였으나 배우의 연기는 여전히 관객을 의식하고 직접적으로 관객을 향하여 연기하는 제시주의적 방식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부조화를 극복하고 무대술 뿐 아니라 배우의 연기에 이르기까지 환각주의가 완전히 실현된 것은 현대 사실주의에 이르러서이다. 사실주의 이후 현대연극은 즉각 반사실주의를 낳아 현대연극에서는 현란할 정도의 양식적 실험이 행해 지는데 여기에 대하여는 이 책의 제 2 부에서 상세히 다루어 지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적인 양식들이 생겨나는 것은 각 시대
마다 진실과 현실(truth & reality)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해석은 그 시대의 철학적. 사회적. 심리적인 영향의 집합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비단 희곡과 공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술과 문학적 측면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적 양식들은 위에서 말했듯이 필연적으로 당시의 지배적인 시대 사조의 영향으로 생겨나게 되는 데 구체적 모습은 희곡 또는 공연이 현실을 반영하는 정도, 곧 얼마만큼 현실에 충실한가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추상화의 수준(level of abstraction)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령 어느 시대 또는 개인은 진리 또는 현실은 사물의 표피에 있지 않고 내면의 정신세계에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시대 또는 다른 개인은 진리나 현실은 오관(five senses)을 통해 지각 할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관찰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전자는 희곡 창작과 무대 상연에 있어서 외면적 세부의 묘사는 다만 진실을 은폐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후자는 그와는 반대로 외면적 세부의 충실한 묘사만이 진리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생각은 현대양식에 있어서 사실주의를 낳게 하였으며 전자의 생각은 반사실주의(anti-realism)의 양식을 꽃피우게 했다.
특히 현대에 있어서 양식의 문제는 창작자들이 이를 첨예하게 의식하고 고의적으로 자신의 양식을 고안 내지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들 양식은 의식적인 운동(conscious movement)으로 추진되어온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가령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운동, 베오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운동은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러나 시대적인 양식에 있어서는 공통되면서도 예술가들은 각기 취향과 개성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동일 사조, 동일 양식, 동일운동 내부에서도 작가마다 구체적 표현의 양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의 개인적 양식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정 작가의 개인적 양식의 문제를 연구하는 일 또한 중요한 문학연구의 분야를 이룬다.
끝으로 무대공연의 방식에 따라서 양식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연출자, 배우, 디자이너들은 어느 희곡을 무대에 올릴 때 그 희곡이 가지는 양식과 관계 없이 그들 자신의 해석에 따라 아주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희곡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20 세기의 연극 공연은 특히 서로 다른 양식들을 한 작품에서 혼용하는 경우들마저 흔히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대 예술의 창작태도를 절충주의(eclecticism)라고 부르는데 이는 현대의 다원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 풍토에서 생겨났다. 곧 하나의 절대적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에서 양식의 문제는 과거처럼 시대정신의 반영이기보다 표현 기술상의 문제로 탈바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어느 작가가 어떤 양식을 채택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이미 전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양식은 다만 표현수법의 문제일 뿐이고 그 같은 양식의 채택이 과연 작가의 의도를 실현시키는 데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따지는 실용적인 관심거리로 바뀌어진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오늘날엔 양식의 통일성, 곧 한 가지 두드러진 양식이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채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예전처럼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한 작품 안에 서로 다른 여러 양식들의 표현기법을 뒤섞어 사용하는 일이 장려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근래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 있어서는 여러 양식을 혼용(intermingling)하는 것 자체가 연극창작의 중요목표인 것처럼, 그래서 양식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빚는 것처럼 느껴지나. 물론 혼용 그 자체를 또 하나의 양식으로 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하여간 현대에 있어서 양식은 목표를 위한 수단의 문제로 어느 정도 변질된 것처럼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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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부 희곡과 공연의 이해 : 정진수
 

    1. 희곡과 공연의 특성.........................9   

    2. 희곡과 공연의 본질.........................17

    3. 희곡의 요소....................................36  

    4. 희곡의 형태....................................51  

    5. 희곡과 공연의 양식..........................60  

    6. 공연의 요소.....................................66  

    7. 희곡과 공연의 비평..........................90  

    8. 현대연극의 의미..............................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