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한국연극과 문화정책

정 진 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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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무심코 '한국연극'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실상 '한국연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를 깨닫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령 우리보다 잘 사는 싱가포르의 연극, 쿠웨이트의 연극, 또는 아프리카 어떤 나라들의 연극 등 그 나라 이름 다음에 '연극'이라는 말을 붙여서 사용할 수 없는 나라들이 지구상에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한국연극'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데 대하여 약간은 감명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서울 장안에서 매일 저녁 막이 올라가는 연극의 수효가 근 40 여 편에 달하고 있는데 세계 유수의 도시들 가운데서 하루 저녁에 30 편 이상의 연극이 공연되는 도시는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 동경, 서울 등을 포함해서 (그 것도 서울만 빼고는 모두 최선진국) 아무리 많이 잡아도 열 군데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게 되면 더 확실하게 감명을 받게 될 것이며 그나마도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동경과 서울 두 곳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르러는 문화적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사정으로 들어가면 자부심은 커녕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나 자신 부끄럽다는 고백을 종종 듣는데 매 학기 내가 담당하는 '연극의 이해' 강의를 듣는 학생들로부터다. 자청해서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좋은 연극을 보여주고 감상문을 받아보면 대체로 "부끄럽게도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연극이었는데 연극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는지 몰랐다" 라는 고백이 근 절반에 달한다. 월간 <한국연극>에 실린 대담에서 전문기획자인 이유리는 서울의 순수연극 관객 수를 대략 1 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서울 인구의 1,000 분의 1 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다. 서울이 이 정도라면 지방의 경우는 그 10 분의 1 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연극'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 무엇에 근거하여 그 존재증명을 말할 수 있는가? 하루 저녁에 근 40 편에 달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하나에 기대기에는 그 기반이 너무나 취약하다. 모든 연극은 종교에서부터 출발하여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나간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 발전단계를 도식화하면 종교극 → 세속화, 오락화 → 전문화, 직업화 → 제도화(상설극장의 건립과 고정관객의 확보) → 예술화 (오락의 경지를 넘어서 예술로 승화하는 연극발전의 최종단계)로 나눌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연극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피상적으로 관찰하자면 최종단계인 예술화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뜯어보면 허구임이 곧 드러난다. 예술화는 커녕 제도화에도 이르지 못했음이 이내 드러난다. 먼저 고정관객은 고사하고 상설극장이 확보되어 있는가? 겉보기에는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 번듯한 공연장들이 즐비하게 구비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공공극장으로 여러 장르의 단체들에게 단기 대관을 하는 다목적홀에 지나지 않으며 소유주체는 예술인이 아니라 정부로 되어 있다. 그나마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소극장들이란 것도 전문공연장이 아니며 임대형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제도화의 전단계인 전문화, 직업화는 달성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는 장황한 해설이 없어도 '아니다' 라는 대답이 손쉽게, 그러나 뼈 아프게 도출되어 나온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세속화, 오락화의 단계에는 적어도 이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불행히도 연극의 오락적 기능은 우리 나라 현대연극(신극)의 발생초기부터 억압되었으며 그나마 1960 연대 이후에는 영화, 방송 등의 대중매체들에게 빼앗겼고 근래에 들어 일부 저급한 연극들(복고풍의 악극류나 소극장의 저질 코미디류)과 아직은 닦이지 않은 솜씨의 뮤지컬연극들에서 연극의 오락적 기능을 되찾기 위한 약간의 시도들이 없지 않으나 그래봐야 어차피 대중매체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나라의 연극은 아직도 발생초기 단계인 종교에 머물고 있다고 해야겠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연극은 20 세기 초나 지금이나 연극에 미쳐서 독립운동하듯이 연극에 경도한 연극인들의 자기 희생적인 노력에 의지하여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바로 그 종교적 열정에서 '한국연극'이란 것의 존재증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결론을 내려놓고 보면 우리 연극에 대하여 극도의 비관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반대의 측면도 없지 않다. 동일한 여타의 순수예술 장르들 곧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과 비교한다면 연극은 그 중에서 가장 자생력을 갖춘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연극이 시장에의 의존도가 가장 높은 순수예술 장르라는 뜻이다. 연극 가운데도 소위 상업연극과 순수연극의 구분이 있다고는 하나 순수연극의 경우에도 한 편의 연극을 제작함에 있어서 제작경비의 반 이상을 시장을 통해서, 곧 유료관람객이 내는 관람료 수입에 기대는 장르는 연극밖에는 없다(흥행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든). 다시 말해서 적어도 연극의 분야에 있어서는 존립의 절반 이상을 매표수입에 의존한다. 실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문학, 미술, 음악, 무용예술의 종사자들이 연극인들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그 것은 본업(창작활동) 외의 수입에 의존한 결과이고 실상 그들의 본업은 부업(?)을 위한 투자적 성격을 지닌 소비행위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연극의 경우는 부업의 기회가 없거나 태부족하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도 70 년 대 이후 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을 키워왔다. 연극인 치고 초기에 거리에 나가 포스터 붙이기 한 번 안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 그 한 증거이다.
연극은 시장을 먹고 산다. 바로 이 명제가 소위 IMF 관리체제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연극계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 연극 공연장에서 유료 관람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팽배한 위기감이 아직은 수면 위로 분출하지 않고 있다 뿐이다. 타 분야 같았으면 벌써 공황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왜일까?
연극계는 굳이 IMF 시대가 아니더라도 흥행실패라는 것을 밥 먹듯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망해도 1 년은 버틴다. 그래도 계속 망하면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러다가 홀연 또 다시 나타나서 일을 벌인다. 연극계에서 망하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모두가 서서히 함께 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의 개인소득이 약간 줄어들고 창작활동이 더러 위축되기는 하더라도 그다지 타격 받을 일은 없어 보인다. 애당초 유료관람객에 의존한 활동을 벌여 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은 다르다. 위에서 이미 말했듯이 연극 공연활동(곧 창작활동)은 생존의 절반 이상을 유료 관람객에 의존해 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관객이 줄어든다면 이 것은 곧 연극의 사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극이 없어진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인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 가운데 적어도 4 분의 3의 국가들에서는 연극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불편을 느낀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연극이 없어진다고 해서 당장 큰 일 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언제 국가가 나서서 연극진흥을 위하여 각별히 애써 본 일도 없으며 국민대중들이 애타게 연극을 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매일 저녁 쏟아지는 TV 일일연속극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식상하리만큼 배불러 있으며 그 수준에 아무런 불만을 느끼지도 않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지금 IMF시대에 연극의 위기를 걱정하는 일은 한가로운 푸념에 지나지 않아 보이며 고작해야 한 줌밖에 안되는(서울만 따져도 기껏 700 명 내외) 연극인들의 생계를 말하는 매우 째째한 수준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면에서 연극을 살리기 위한 정책방안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발전의 단계에서 연극이 차지하는 의미의 중요성 때문이다. 연극을 빼고라도 우리 나라가 IMF체제를 벗어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문화발전은 반드시 이룩되어야 할 과제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순수예술 분야 가운데 오로지 연극만이 미미하나마 관객의 지지에 의존하는 생존형태를 만들어 냈다. 이제 연극이 쇠락하면 연극뿐 아니라 여타의 순수예술 장르들도 상당히 오랜 기간 이러한 현상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여 이 위기를 타개하고 마침내 연극을 지금보다도 더 탄탄한 관객의 지지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다가올 21세기에는 마침내 우리나라도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확실한 계기를 붙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것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중요한 시험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결코 연극이라는 한 분야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2) 역사적 고찰


연극을 살리기 위한 정책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또 그러려면 우리 연극의 특수한 성격을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 잠시 우리나라 현대연극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1920 년대(토월회)로부터 우리나라 현대연극(또는 신극)의 역사를 크게 보아 제 1 기와 제 2 기의 두 시기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제 1 기는 20 년대부터 50 년대까지로 잡으며 그 시기를 연극문화가 이 땅에 이입하기까지의 시기 곧 태동기라고 보며, 제 2 기는 60 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시기로 현대연극의 개척기로 본다. 이 개척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며 우리가 이 개척기를 빨리 끝내고 제 3 기인 정착기로 들어설 수 있다면 우리 연극은 안정적 발전기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적절한 시기는 이제 세기가 바뀌는 2000 년대 초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어서 21 세기의 우리나라 연극이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적으로 갈망하며 하루바삐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곧 이 글의 제목아 되고 있는 '연극발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옳게 수립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 글은 단지 IMF 시대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단기적 처방의 모색이 아니라 한국연극의 장기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거시적 전략의 수립에 진정한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같은 노력에 실패하고 만다면 한국연극의 제 3 기는 정착기가 아니라 쇠퇴기 내지 소멸기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는 한국 연극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대목을 함께 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태동기


아다시피 우리나라의 현대연극은 1920 년대에 신극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매개로 하여 서양연극이 유입된 데서 비롯된다. 주로 동경 유학생들이 일본에서 신문화를 접하고 귀국하여 이 땅에 일본식으로 윤색된 서양식 연극의 씨앗을 뿌렸다. 이들은 다년간 극장에서 경험과 훈련을 쌓아 연극술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 아니라 주로 책을 통해서 서양의 연극이론 내지 희곡문학 수업을 받았으며 현장학습이라고는 당시 일본의 아마추어적 연극을 통해서 곁눈질한 수준일 수밖에 없었고 고국에 돌아와서 그들이 펼친 연극활동 또한 직업적 활동이기보다는 계몽 운동적 성격이 있었다.
이 무렵 한편에서는 일본의 대중연극인 소위 신파극을 받아들여 연극을 상업적 흥행목적으로 추구하는 세력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일반대중들의 폭 넓은 지지를 얻어냈다. 이들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1930 년 대는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연극의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여론 주도층이랄 수 있 있는 신극의 담당자들은 지식인들로서 이들 저급한 통속 연극형태인 신파연극을 매도하였으며 또 불어닥친 당시의 시대상황, 곧 태평양전쟁과 해방과 해방 후의 혼란과 6 · 25 등으로 말미암아 신극은 물론 신파 연극 또한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중에 <신협>과 <국립극단> 등의 몇 연극단체들이 존속하여 명맥을 이어갔다고는 하나 사실상 연극예술의 활력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1920 년 대부터 50 년 대에 이르는 기간은 그 안에도 더러 부침이 있었다 하더라도 한국 현대연극의 태동기, 또는 제 1 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2) 개척기


우리나라에 연극이 다시 소생한 것은 1960 년 대라고 할 수 있다. 1960 년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과 더불어 일기 시작한 소위 동인제 극단들의 탄생이 오늘날 연극활동의 시발이라고 하겠으며 한국 현대연극의 제 2 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1960 년 대의 연극은 출발부터 그 이전과는 환경이 사뭇 달랐다. 우선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이제 연극의 오락적 기능은 영화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고 뒤이어 라디오, TV 등의 방송매체까지 등장하면서 1970 년 대에 이르면 대중 오락적 기능은 거의 완전히 연극에서 떠나게 된다. 그러나 60 년 대 연극을 일군 담당자들 자신이 대부분 대학에서 아마추어 연극활동을 이끌어 온 사람들로서 지식인 계층이었으나 이들은 연극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쌓은 사람들이기보다 딜레탕트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60 년 대의 상황은 일제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우리나라는 독립국가로서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활동이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 · 16 군사구데타 정권하에서 표현의 자유는 상당히 제약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는 후진국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특히 지식인들의 취업은 극도로 열악하고 고학력 실업의 문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연극인들이 연극을 선택한 것은 적극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일제시대처럼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막혀 있는 상황 속에서의 소극적, 도피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대다수의 60 년 대의 주도적 연기인들이 70 년 대 초 TV방송국의 개국과 함께 방송으로 졸지에 대이동을 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더구나 당시만 하더라도 탈렌트는 천직(賤織)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 있을 때였는 데도 말이다.) 이 같은 점은 당시 극단들의 활약상(?)을 보아도 금새 드러난다. <민중극단>의 경우만 보아도 1963 년에 창단한 뒤 첫 10 년 동안은 1 년에 고작 1 편의 연극도 공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1 년 내내 한 작품의 연습에 몰두했기 때문은 전혀 아니다. 대단히 불성실한 연습의 과정을 거쳐 매우 비전문적인 방법으로 간심히 막을 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연극인들이 연습보다는 거의 술로 지새우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도 일제시대부터의 전통이었다.)
일종의 룸펜 또는 약간 미화하자면 보헤미안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60 년 대의 연극인들이 추구한 연극 역시 그들 내면의 진정한 욕구의 표현이거나 대중들의 욕구를 대변한 것은 더욱 아니며 남에게 그들의 사회적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시적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연극은 엘리티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하는 연극 또는 하고 싶은 연극을 그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알다시피 입센 이후의 현대연극은 고도의 지성적 탐구의 산물이다. 특히 사실주의 이후의 모더니즘의 연극은 서구사회에서도 대중들이 쉽게 추종할 수 있는 연극이 아니어서 그 난해성은 초기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더구나 1960 년 대에 대두한 소위 부조리의 연극은 전문 연극인들에게조차도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연극으로 서구인들에게도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아방가르드 연극이었다.
60 년 대의 우리 연극인들이 가장 선호한 연극이 바로 부조리 연극이었다. <실험극장>의 창단공연이 이오네스코의 <수업>이었고 <민중극단>의 창단공연이 또한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였다면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연극인들은 그들 자신도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연극을 함으로서 그들이 하는 연극을 대중들 또한 당연히 이해 못할 것을 기대하며 그들로부터 매우 난해한 예술을 하는 고도의 첨단 지성인으로 대접 받기를 원했다. 그들은 단지 무능력한 실업자로 비치기보다는 심오한 예술을 위하여 취업마저 포기하고 예술이라는 고난의 십자가를 자청해서 걸머진 희생적 예술인으로 보이기를 희망했던 것이다.(머지 않아 이들이 대거 TV로 이동함으로 해서 탄로가 나기는 했지만. 예술이냐 빵이냐가 당시의 화두였지만 실은 행동은 이미 저지른 뒤에 공연히 고뇌하는 듯한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것 역시 피차 아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위선적인 지성인 우대 풍조는 지금까지도 가셔지지 않고 있는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다. 이조시대부터 학문과 선비를 존중해 온 나름대로 많은 장점을 지닌 전통이 연면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일제시대에 한층 강화되어 소 팔고 논 팔아 자녀(그 중에서도 자)를 서울의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 온 국민의 염원이었으며 이 같은 한편으로 개탄할 만한 현실이 지금도 입시지옥과 고액과외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고질적 적폐로 남아있다. 이 같은 위선적 전통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 온 분야가 저널리즘이었고 그 중에도 신문사의 문화부가 당연히 선두일 수밖에 없었으며 당연히 신문에서 안읽히는 지면이 문화면이었다. 문화부 기자는 자기도 이해 못하는 기사를 더욱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현학적으로 쓰는 것이 유능한 기자로 대접 받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얼른 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사를 어렵게 쓸 수 있기에 적당한 분야가 곧 문학과 미술과 연극이었다. 따라서 사회풍조가 바뀌면서 가장 앞장서서 타락하고 상업적으로 오염된 분야 또한 문학과 연극이 된 것이다. (그래서 80 년 대 이후 신문지면이 개혁되면서 가장 크게 개혁된 부분이 문화면이고 오늘날은 그 반대의 현상, 곧 반지성의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당시의 연극인은 밥은 굶어도 신문의 문화면에서는 황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어려운 연극만을 경쟁적으로 골라서 해 왔던 것이다. 때로 관객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연극을 시도해 봤자 연극의 타락이라는 질타의 소리만 되돌아올 뿐 어차피 제한된 관객 때문에 별반 흥행적 성공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70 년 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은 중대한 변화의 국면을 맞이한다. 5 ·16 군사구데타에 의해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취약한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추진해온 경제건설이 가시적 효과를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엄숙주의와 도덕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현실주의 또는 실용주의적 사고를 키웠다. 이 같은 시대적 환경 속에서 한국연극 또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70 년 대 경제성장의 덕택에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이로 말미암은 취미의 다변화에 힘입어 연극에 유료관객이 증가하게 되고 심심찮게 흥행성공의 사례가 등장하면서 매표수입이 연극제작의 중요원천으로 자리잡게 된다. 마침내 연극이 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무렵 역사상 최초로 정부의 예술 지원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오로지 연극인의 희생 하나에만 의지해 온 연극활동에 매표수입 + 정부지원이 가세하게 되고 80 년 대부터는 여기에 기업협찬까지 덧붙기 시작하면서 연극의 존립기반은 상당히 확장되었다. 이 중에서도 한국연극의 변모(당대적 표현방법으로는 '근대화')를 가져다 준 결정적 변수는 물론 유료관객의 증가에 따른 매표수입의 확대이다. 물론 70 년 대 초 제정된 문예진흥법에 기초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설립 등 정부의 예술지원 정책의 시발도 무시 못할 기폭제로 작용했다. 여기에 대하여 김순규는 <예술문화정책의 전개과정과 앞으로의 과제>라는 논문에서 정부 수립 후 문예진흥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기간을 '후진국형 예술진흥책'의 시대(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무 정책이 없던 시대)로 보고 그 후 1990 년 까지를 '중진국형 예술진흥책'의 시대로 분류하면서 이 기간에 앞서 말한 문예진흥원의 설립을 통한 예술지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국립 극장, 국립 국악원, 국립 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립 등의 문화시설의 설치와 건립이 뒤따랐음을 그 증거로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투자재원의 부족 등 여러 이유들로 해서 아직은 기대만큼의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음 또한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70 년 대는 국가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다. 경제발전의 대가로 도덕성의 상실을 지불했듯이 연극에서도 유료관객의 증가에 대한 대가로 상업적 타락 또는 오염을 자초했다. 그러나 연극의 상업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연극제작이 주로 매표수입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가 타 순수예술 분야와는 달리 연극의 생명력을 키워주었다는 대단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천박하고 왜소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훨씬 더 큰 부정적인 측면을 낳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연극이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는 연극이 비록 대중들의 삶과는 유리되었다 하더라도 연극은 고원한 예술 장르라는 인식이 존재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60 년 대의 연극인들이 그들의 모습을 고원하게 치장하기 위하여 연극에 뛰어들었고 따라서 그들은 연극에서의 엘리티즘을 추구했었다. 그러나 연극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이미 시장에 들어와 있는 타 분야들과 스스로를 동률에 놓고 비교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미 거대산업으로 성장해 있는 방송이나 비록 취약하더라도 출발부터 산업적 체질을 익혀온 영화와 비교해도 연극은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러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도 70 년 대 까지는 연극이 이중 인격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방송이나 영화에 대하여는 순수성을 무기로 스스로의 가난을 변호하고 타 순수예술에 대하여는 '팔리는' 예술이라고 으스댈 수 있었다. 같은 연극끼리도 흥행에 성공한 연극은 예술적 수준을 의심 받아도 흥행 성공만으로도 느긋하게 자위했다.)
우선 연극인의 자질에서부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소위 상류 대학은 커녕 대학 출신이 연극에 뛰어드는 경우는 희소해졌고 대학 출신이더라도 4 년 동안(대개는 전문대 2 년) 연극만 공부한 연극영화과 출신들이 연극인의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의 전문적인 기량은 이전의 연극인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러나 60 년 대 연극인의 주류가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자질면에서 연극인의 수준이 하향 평준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알고 보면 60 년 대에 연고대는 결코 상류대학으로 분류되지 않았었고 서울대만 하더라도 법대, 의대, 상대, 공대를 제외하면 학력수준에서 하류대학이나 다름 없었으나 적어도 이들은 인문학적 바탕에서 연극을 고급예술로서 추구했다. 그러나 70 년 대 이후 연극인의 주류는 예능훈련을 바탕으로 연극을 하나의 직업 (보수가 매우 적거나 없는)으로 인식하고 추구했으며 그 것도 방송이나 영화 등의 분야에 우선 취업하는 데 실패한 다음 차선책으로 투신한 경우가 대부분을 이루었다. 60 년 대와 70 년 대 이후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가 곧 방송과 연극의 서열이 전도된 것이다. 60 년 대는 방송에 투신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는데 70 년 대 이후는 그 것을 영예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가 연극에 가져다 준 효과는 연극예술의 왜소화와 품격의 저하이다.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방송인의 월 평균 소득이 500 만원인데 연극인은 50 만 원에 불과하다면 연극은 방송에 비하여 10 분의 1 짜리 직업으로 전락한다. 과거에는 연극인의 수입이 50 만원은 커녕 5 만원도 안되었거나 아예 없었으며 그럴 때에도 연극은 고원한 고급예술이라는 자긍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50 만원이라도 감수하며 그나마도 확실하게 보장해 주기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러는 연극인 스스로 월 평균 소득 50 만원 짜리 근로자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된다. 연극 스스로 연극을 왜소한 분야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연극인 스스로 품격의 저하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언론 또한 시대 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연극을 연예 오락 기사와 동등한 수준으로 취급하면서 품격의 저하에 일조했다. 국립 극단이 몇 해 전에 공연한 <오이디프스 왕>을 취재하던 기자가 작가인 소포클레스는 올해 나이가 몇이냐는 질문을 던져 실소를 자아냈던 일이 결코 농담거리가 아니라 달라진 시대분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에피소드이다. 실제로 대다수 연극인들은 외국작품을 번역해서 공연할 때 번역이 옳게 되어 있는지, 작가가 누구인지, 작품은 과연 어떤 작품인지에 대한 초보적 이해마저 가지지 않고 예능적, 기술적, 흥행적 접근밖에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령 영국 극작가 조오튼의 <What the Butler Saw> 같은 작품은 영국의 지식인마저 당혹케 할 만큼 현대의 황폐한 정신풍토를 야만적으로 희화한 고도의 지적 게임과도 같은 블랙 코미디인데 이를 번역해서 공연하는 극단은 제목부터 <원하시면 드릴게요> 라고 야릇하게 붙여놓고 단지 유쾌한 소극(笑劇) 정도로 이해하며 공연했으나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문제 삼지도 않는다. 이 같은 지성의 공백(空百) 상태가 한국연극의 품격을 떨어뜨려 더 이상 연극이 지적(知的) 분야로 인식되기를 멈추고 단지 예능분야로 격하되었다.
그런가하면 아이러니컬하게도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사이비 지성의 과잉상태가 빚어졌다. 60 년 대의 연극이 부조리의 연극에서 출발했듯이 70 년 대에 주목받은 또 하나의 연극세력은 소위 잔혹연극, 더 넓게는 제의(祭儀)의 연극을 흉내낸 연극이었는데 유덕형, 안민수, 오태석, 등의 등장과 이들을 부축인 평론과 또 평론에 예속된 저널리즘의 합작에 힘입어 커다란 붐을 형성했다.
아다시피 부조리의 연극이나 제의의 연극은 모두 반이성, 반논리, 반지성의 연극으로 서구사회의 오랜 합리주의 전통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싹텄다. 그 중에도 제의의 연극은 더 철저히 논리를 배격한 연극이다. 그런데 합리주의의 전통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들 연극이 유행한 이유는 이들의 서구의 당시로서는 최첨단 아방가르드 사조라는 것 때문이었다. 대(對)서구 열풍 콤플렉스를 지닌 우리의 지식사회는 서구의 아방가르드 사조라면 당연히 고개를 숙이고 흠모해왔기 때문에 이들의 연극행위를 최고의 지성적 행위로 떠받들 게 된 것이다. 웃기는 일 중의 하나가 이들 연극이 비합리주의의 연극이기 때문에 창작자 자신이 자신들의 작업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해도 아니 그럴수록 더 심오한 예술가로 대접 받았으며 평론은 누가 더 난해한 언어로 이들의 행위를 설명해 내느냐는 시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연극이 한국연극의 지평을 넓혀주었다는 긍정적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을 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연극은 의식 있는 생활대중들로부터 더욱 멀어져갔고 다만 연극을 오락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소비대중의 가장 선호도 낮은 품목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70 년 대부터 우리 연극의 양극화 현상이 빚어졌다. 한쪽에서는 영화나 TV보다도 질 낮은 연예인(entertainer)들이 주도하는 연극이 존재하고 그 반대쪽에서는 서구의 첨단 아방가르드 연극을 추종하는 순수파(purist)의 연극이 존재한다. 연예인파는 존경 대신에 돈벌이를 통해 (영화나 TV보다 훨씬 낮은) 연극인의 명맥을 유지하고 순수파는 돈보다는 첨단 예술가라는 존경과 명예를 얻으며 때로 매스컴의 부채질 덕분에 돈벌이에마저 성공하여 두 마리 토끼를 몽땅 잡는 쏠쏠한 재미를 맛보기도 한다.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서 비단 연극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만연되어 있다. 곧 건강한 중간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러 모습을 드러내도 대접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곧 수그러든다. 연극에서도 간혹 시도되는 중간연극(이런 말도 있나?)은 흥행에도 실패하고 평론의 관심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같은 중간세력이 부상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우리 연극의 살길이라고 믿으며 이 글의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말하는 중간세력의 연극이라함은 오락성을 갖추되 결코 천박하거나 치졸하지 않으며 어느 만큼 지적(知的) 훈련을 쌓은 관객층이 즐길 수 있는 세련미와 품격을 갖춘 연극을 말하며 예술성을 추구하되 결코 난해성과 지나친 형식주의에 떨어지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인생과 사회에 대하여 의미 있는 통찰을 담은 그런 연극을 말한다.
여기서 잠시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지난 99 년에 대학로의 소극장들에서 공연된 숱한 작품들 가운데 두 편의 연극, 곧 미국의 희극작가 닐 사이몬의 <사랑을 주세요>와 일본 극작가의 <달님은 예쁘기도 하셔라>가 미흡하나마 내가 말하는 중간연극에 속한다. 유명 연극인이 참여하지 않았고 특이성이 없다는 이유로 지원의 혜택도 받지 못했고 공연에 눈길을 끌 만한 요소도 없었고 썩 우수하지도 못했다는 이유로 평론이나 매스콤으로부터도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그래서 관객도 들지 않아 흥행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서 공연을 관람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한결같이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만약에 이들 공연에 지원의 혜택이 주어지고 그래서 보다 뛰어난 연극인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보다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다면 이들 공연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을 것이며 이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창작극도 아니고 평범한 번역극을 평범한 연극인들이 모여 평범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간단히 매장시켜 버리는 우리의 연극 풍토야말로 우리 연극의 발전을 저해하는 독소라고 단언한다.
우리나라 연극이 아무리 발전한 들 뉴욕이나 런던의 수준을 능가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야 하겠는가?
2000 년 6 월의 경우를 놓고 보자.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33 편의 공연이 행해지고 오프에서는 37 편의 공연이 있었다. 소위 상업극장가로 알려진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 22 편, 드라마(대사 위주의 정극) 7 편, 희극 4 편이 공연되었고 실험연극의 온상으로 잘못 알려진 오프에서는 뮤지컬 10 편, 드라마 11 편, 희극 14 편에 실험극은 단 2 편에 불과했다. 양쪽을 다 합해서 총 70 편 가운데 평범한 관객이 볼 수 없는 공연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런던의 경우는 어떤가? 상업 극장가로 알려진 웨스트앤드에서 공연된 총 54 편의 공연 가운데 뮤지컬이 23 편, 드라마가 25 편, 희극이 6 편이며 변두리(fringe)에서 공연된 25 편의 공연 가운데 드라마가 19 편, 희극이 4 편, 뮤지컬이 2 편에 실험극은 없다. 여기에 국립이나 RSC 등은 제외했다. 여기에도 평범한 관객이 볼 수 없는 연극은 거의 없다. 다만 영국의 평균적인 관객 수준은 미국보다 높아서 뮤지컬보다 드라마 작품수가 월등히 많으며 극작가의 면모를 보아도 셰익스피어를 비롯하여 밀러, 핀터, 카워드, 조 오튼, 프리스틀리, 윌리암스, 니콜스, 마멧, 입센, 골도니, 베데킨드 등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결론적으로 뉴욕이나 런던의 연극은 대략 상업연극과 중간연극이 반반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하여 현지의 연극 전문가들은 만족하고 있는가? 피터 브룩처럼 이들 연극을 쓰레기 같은 '죽은 연극'으로 매도하지는 않을 지라도 연극 예술의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순수파들은 대체로 이 같은 현상을 개탄스럽게 볼 것이다. (물론 절대 다수의 연극인 및 연극 지망생들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만) 그렇다면 우리도 이들의 의견에 동조해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의 뉴욕이나 런던연극의 수준까지는 따라잡아 놓은 뒤에 천천히 개탄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미국의 뚱보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면 아프리카 난민도 따라서 다이어트를 해야하는가 하는 질문과 견주어 생각해 볼 일이다. 피터 브룩만큼 뛰어난 이론가나 연출가도 못 되면서 눈높이는 그에게 맞추는 것이 웃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나라에는 대학의 연극과 학과가 늘어나서 무려 40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임교수는 대체로 두어 명의 이론 전공 교수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선진국에 유학하여 고답적인 연극이론을 전공한 학자들이 대학을 점령하고 연기, 연출, 무대 등 실기를 교육할 수 있는 시설이나 교수진은 태부족한 가운데 선진국의 첨단연극에 대한 공허한 이론만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으며 이들 교수들이 대체로 연극 평론가를 겸하여 한국연극의 방향타를 조종하고 있다. 이들이 연극과 일반대중들의 접촉을 가로막는 주범인 것이다. 2000 년 5 월에 성균관 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서 대학로의 연극관객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었다. 이들은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은 관객들이지 길거리의 행인은 아니다. 전체 조사 대상자 1,012 명에게 "어떤 종류의 연극을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드라마 214 명, 희극 323 명, 뮤지컬과 악극 424 명이었으며 실험적 연극을 좋아한다는 대답은 57 명에 불과했다. 좋건 싫건 이들이 우리나라의 관객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연극의 관객층은 내가 위에 말한 '의식 있는 생산적 생활대중'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연극이 극소수 아방가르드 연극을 선호하는 극히 일부의 매니아 계층에 의존하여 지탱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영화나 TV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는 저급한 취미의 소비대중들에 의존한다면 낙곡(落穀)에 의지하여 간신히 연명하는 가련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연극이 대중 매체들과 확연한 차별성을 유지하면서 그 존재의 가치를 싫증해 보이고 교육 받은 관객층에 호소될 수 있는 연극은 위에 말한 중간세력의 연극밖에는 없다. 70 년 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창작극 가운데 이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는 작품들을 과연 몇 편이나 꼽을 수 있겠는가? 근년에 들어와서 창작극과 번역극의 비례가 역전되어 지금은 가히 창작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오히려 창작극의 경향은 더욱 위에 말한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번역극의 경우 편식현상은 더욱 심하여 우리는 외국 극작가 가운데 베케트, 이오네스크, 핀터, 주네, 아라발, 브레히트, 한트케, 뮐러 등의 대단히 난해하고 난삽한 작품들을 더러 공연할 뿐이고 그나마도 근래에는 서구의 실험적 연출가들의 연극을 흉내 낸 퍼포먼스류의 연극이 기승을 부리며 60 년 대 까지만 해도 관심가졌던 오닐, 밀러, 윌리암스, 아누이, 뒤렌마트, 프리쉬, 등과 근래에 주목 받는 신진외국 극작가들 가운데 수정사실주의 계열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겉으로는 세계화를 부르짖고 우리 연극의 해외진출을 떠들면서도 우리 연극은 어느 때보다도 외국 문화에 빚장을 닫아놓고 있다고 보인다. 몇 해 전 한 일본의 연극인을 만났는데 영국의 희극작가 앨런 애이크번 연구회의 회원으로서 한국의 어느 극단이 그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을 보러 왔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애이크번은 영국의 닐 사이몬이라고 알려진 인기 현역 희극작가이지만 연구회를 만들 만큼 비중 있는 극작가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이런 연구회까지 만드는 일본인들의 세심한 정보수집 노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3) 정책대안 : 한국연극의 정착기를 위하여

 
이제 20 세기가 갔고 21 세기에 접어들었다.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한국연극을 정착기로 진입시키느냐 아니면 이제 한국연극이 쇠퇴기 또는 소멸기로 접어들 게 방치하느냐는 우리 모두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나라가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하여는 한국연극이 정착기로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일이 필수적이며 또 연극은 다른 순수예술 분야 가운데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이만큼이라도 연극문화를 향유하게 된 것만해도 신기한 일이기는 하나 출발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고 시대의 변화에도 바르게 대처하지 못해 왔다. 과거 일제시대부터 또 지난 60 년 대에도 애당초 연극을 시작할 때 연극자체를 추구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연극 외에 달리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연극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제 21 세기에 진입한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연극의 방향을 잘못 잡을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한 거창한 목표를 설정해 두고 연극이 여기에 기여하기 위하여는 해외무대에 진출하여 갈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 따오듯이 문화도 그런 일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연극인 가운데도 그 것을 목표로 삼는 측이 없지 않다. 이 같은 분위기는 앞서 인용한 김순규의 논문에서도 드러나는데 그가 우리나라 고위 문화정책 수립자라는 점에서 대표성마저 띄고 있다. 그는 "이런 현상은 대표적인 우리 예술을 외국에 선 보이는 데도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가부키,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 영국의 로얄 발레단과 같이 국가를 상징할 수 있는 소위 간판예술이 없다. (중략)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체육이 짧은 기간에 한때 올림픽 4 위 권에 오른 것이나 경제부문에서 조선, 자동차, 첨단전자 등 특수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오른 것과 비교할 때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쓰고 있다. 이 또한 연극을 연극자체의 기능과 목적을 이용하고자하는 태도이다.
우선 우리 연극의 발전목표를 세계 최선진국 수준에 두는 것 자체가 실험가능성도 희박할 뿐 아니라 꼭 바람직한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미국의 연극보다는 일차적인 목표를 덴마크, 네델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은 나라들에 두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들 나라들은 아직까지 세계적 수준의 명성을 날리는 극작가, 연출가, 배우들을 대량 배출해 낸 실적은 없으나 양질의 극장문화를 향유하고 있으며 탄탄한 연극지원 정책을 펴고 있고 수준 높은 관객층을 두텁게 감싸안고 있으며 일급의 전문 연극인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그들 나라 국민들의 높은 문화수준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연극예술은 언어를 주 매개로 하는 장르의 특성상 국제교류에 썩 적합한 매체가 아니며 국위선양이나 문화수출보다는 자국민에게 차원 높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21 세기에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일환으로 연극진흥정책을 펴나간다면 무엇보다 올바른 방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IMF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문화 예술의 진흥을 위하여 진력해 왔으며 각종 지원 정책의 수립은 물론 빈사상태에 처한 공연계의 활성화를 위하여 특별 지원을 베풀었고 문화계의 숙원이었던 문화 예산 1 % 달성 등 예산의 뒷받침에도 적지 않은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예산의 확충 못지 않게 먼저 지원 목적을 확실히 설정하고 확보된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연극의 유형들,
1) 영화, TV와 대등한 수준의 연예, 오락차원의 대중연극(뮤지컬 포함)과,
2) 서구의 최첨단 아방가르드 연극을 모방했거나 한국적 전통과 접목하여 창작한 실험적 연극, 그리고
3) 오늘날 한국인의 삶을 교육받은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예술적으로 완성도 있게 표현해 낸 수정 사실주의 계열의 연극들 가운데서 어디에 역점을 두고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선행해야 한다.
나는 위 세 가지 유형의 연극을 모두가 지원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 방법과 비중은 달라야 하며 그 중에도 위에서 말한 중간세력의 연극, 곧 제 3 항의 연극에 대하여 가장 집중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순서대로 지원의 방법과 정도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1 항의 연극에 대하여 : 여기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지원은 불필요하다. 이 유형의 연극은 상업주의 연극이므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하여 자유경쟁에 맡겨야지 외부의 개입은 오히려 시장의 흐름을 왜곡하여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그 대신 간접적인 여건의 지원은 매우 필요하다.
첫째 규제를 철폐하여 자유로운 제작활동과 영업활동을 보장해 주어야 하며 언론사나 대기업의 참여로 빚어지는 불공정 경쟁의 사례들을 차단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둘째, 여건의 개선을 위하여 장기흥행공연이 가능하도록 공연장의 확충이 절실히 필요한데 공공극장의 증설 못지 않게 민간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건축법, 세제, 금융 등의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문화특구제도를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대안들이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셋째, 대 관객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현재 문화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입장권 전산망 구축 사업은 21 세기 문화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이와 더불어 연극뿐 아니라 문화예술이 국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문화예술 홍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개발되어야 하며 특히 공영방송이 프로그램 개혁을 통하여 문화예술이 국민생활의 한가운데에 파고들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넷째, 공연예술이 문화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기술지원이 필요하다. 공연장과 제작현장에 종사하는 전문 극장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종합예술학교는 실업자 되기 위한 딱 알맞은 고급인력의 양성소가 되어 민간대학들과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는 무대, 조명, 음향 등의 실무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 기술인력의 공급이 더 시급하며 정부가 이들에 대한 공인 자격증제도를 시급히 도입하여 전국의 공공극장에 취업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공연예술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분야이다.
다섯째, 현재의 연극활동은 개인 사업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법인격을 가지도록 의무화하여 책임 있는 제작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계약상의 의무이행과 세제상의 처리 등 상업적 연극 제작행위가 투명성과 건전성, 합법성을 지니도록 유도해야 한다.
2 항의 연극에 대하여 : 여기에 대하여는 직접지원과 간접지원이 모두 필요하다. 우선 직접지원으로는 뛰어난 작가와 연출가를 선정하여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엄정한 평가와 심사과정을 통하여 우수성이 인정된 자에게는 공연계획안을 검토하여 가치가 인정될 경우 제작비 전액 지원도 베풀어야 하며 해외무대에서 인정 받았을 경우 적절한 보상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항목의 연극은 성공적일 경우 국위선양의 효과도 있지만 기성연극에 신선한 자극과 영향을 주어 한국연극의 발전을 위한 견인차의 역할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항목의 연극은 일반대중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종류의 연극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소수의 선택된 관객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연극이다(대외적으로 대중의 각광을 받는 연극도 나올 수는 있으나). 따라서 이 항목의 연극은 거의 전적으로 외부의 지원에 의존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원의 절차와 방법에 있어서 공정성의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성가를 인정 받은 예술가 못지 않게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는 신진의 발굴과 육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발표무대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신규 사업으로 검토중에 있는 '실험연극제' 같은 사업은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실험적 연극작업을 펼 수 있는 전용공간을 몇 군데 마련해 주는 것도 매우 유용한 일이다. 이 같은 공간에는 공연공간뿐 아니라 워크숍과 자료실, 세미나실, 등이 갖추어져 있어서 활발한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각 대학의 연극과들과의 교과과정과 연계한 유기적 협동작업을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3 항의 연극에 대하여 : 이 항목의 연극은 우리 연극의 중심부로 가장 집중적이고도 다각적인 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선 1 항의 연극에 대한 지원을 함께 누리면서 별도의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1 항의 연극과 구별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하여 3 항의 연극은 먼저 '비영리(non-profit) 순수연극'이라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 이 판정을 누가 어떻게 내리느냐는 연구하면 얼마든지 방법이 찾아질 것이다. 문제는 지원의 방법인데 2 항의 실험연극에 대하여는 제작지원이 가장 효과적인 지원의 방법이겠으나 현재의 제작여건을 감안했을 때 3 항의 연극에 대하여는 제작지원보다는 관객지원이 가장 실효성이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정부가 IMF를 의식하여 확대실시하고 있는 '사랑티켓' 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1 항의 연극까지 포함시킴으로 해서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만 불러오고 있다. 이 제도는 2, 3 항의 연극에만 혜택이 주어지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제작하는 상업연극에까지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지원제도로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배우지원제도이다.
1 항의 연극에서는 배우는 계약에 의해서 적정한 출연료를 보장 받는다.
2 항의 연극은 어차피 배우중심의 연극이 아닌 데다 비교적 제작규모가 영세(예외적인 경우는 제외하고)하고 많은 경우 경력배우를 기용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3 항의 연극은 배우예술에의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제작경비 중에서 배우 출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고 또 배우들이 흥행의 결과 가장 많이 피해를 입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연극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위기에 처해 있는 분야가 연기분야이다. 이 상태가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쓸 만한 배우는 모두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평상시에도 대다수 배우들이 실업상태인데 지금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배우 지원제도는 제작자(극단)가 배우에게 지불하기로 약정한 금액만큼을 정부가 지원해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배우 출연료의 반을 지원금의 형식으로 지원한다면 제작자에게는 제작비의 부담을 크게 줄여서 작품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고 배우는 최저생활을 어느 만큼 보장 받을 수 있음으로 해서 연극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제작자가 기용하는 모든 배우에게 이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경력이나 성실도에 있어서 일정 자격을 갖춘 자에게 제한하므로 해서 연극에의 정진과 연극행위의 건실성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행중인 '사랑티켓' 제도와 배우지원 제도만 가지고도 연극의 활성화는 적지 않이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재공연 지원' 제도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3 항의 연극에 국한하여 공연의 결과를 보고 가치가 인정되고 건실한 관객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본격적인 지원을 하여 안정적인 재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이 공연을 널리 홍보하여 국민 대중들로 하여금 연극 예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은 연극 발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되어 줄 것이다. 이 같은 '재공연 지원' 제도가 마련된다면 각 극단은 최초 투자시에 불필요한 제반경비(특히 기획, 홍보비)를 대폭 줄이고 공연의 내실을 기하는 데 총력을 모을 수 있으며 초연의 평가에 따라 재공연 지원작으로 선정되면 그 때에 가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외형적 투자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위 두 가지 방법을 결합한다면 최초 공연하는 배우들의 출연료를 지원 받고 나머지는 최소한의 투자로 공연을 만들어 사후에 재공연 지원을 받을 때 본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으며 이미 공연에 대한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흥행의 위험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장치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 문화예술 정책의 수립이다. 나는 이미 앞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3 항의 연극이 가장 취약한 것이 우리 연극의 병폐라고 지적했다. 이는 연극인들의 각성만으로 시정될 수도 없을뿐더러 이 병폐를 만든 장본인인 연극인들이 스스로 앞장서서 이를 고쳐갈 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 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나라 관객들의 의식을 높여 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는다. 첫째는 지금 정부에서 추진중인 교육개혁 과업이 성과를 거두어 청소년들이 입시 지옥에서 해방되어 일찍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일이다. 아울러 초, 중, 고등학교의 교과과정을 개혁하여 수준 높은 문화적 안목을 가지게 하므로서 스스로 질 낮은 연극을 외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지도층부터 솔선 수범하여 소비 향락적 생활태도를 버리고 고급문화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말초적, 감각적 경향으로 치닫는 언론부터 개혁되어야 할 일이지만 이처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히 IMF 한파가 밀어닥쳐서 사회분위기가 많이 차분하게 가라앉기는 했으나 현재의 시련을 기회로 만들기 위하여는 정부가 앞장서서 우리 사회를 점잖고 기품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드문 기회를 맞이했다. 지금은 모두가 경제를 걱정하는 데 여념이 없지만 실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문화민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4 ) 맺는 말.

 
나는 앞에서 우리 연극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 각각에 대한 차별적 지원방법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의 연극을 어떻게 분류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데 타율적인 방법은 있을 수 없다. 연극인 스스로 매번의 공연을 스스로 분류하여 지원기관에 지원신청을 하면 지원기관에서 위촉한 심의위원회가 매번의 공연 작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신청인의 타당성을 심사하면 될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동일 연극인이 이번에는 순수연극을 하다가 다음 번에는 상업연극을 하고 그러다가 또 느닷없이 실험연극으로 돌아서는 경우마저 있기 때문에 어느 연극인 또는 어느 단체를 특정 카테고리에 분류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의 작품을 그 때 그 때 심의하는 길밖에는 없다.
그러나 1 항의 연극과 2 항의 연극은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동일인 또는 동일 단체가 왔다갔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1 항의 연극과 3 항의 연극을 구별하기가 용이치 않은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영리, 비영리를 매번 새로 심사하여 구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분류는 선진국에서는 관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예를 참고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의 맨 앞에서 이 땅에 연극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신기하다고 했으며 그 것은 순전히 연극인들의 희생의 덕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연극인들이 자청해서 이 같은 희생적 작업에 매달려 온 것이 순전히 탄복할 만한 희생정신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 피치 못할 사정이 달라지면 미련 없이 연극을 떠나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연극이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은 연극인의 공로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연극의 발전을 말하는 것은 그동안 고생해 온 연극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문화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연극도 한몫을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제부터 연극은 연극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차원 높은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해서 그들의 정신을 살찌우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극인은 이 과정에서 수혜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연극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할 막중한 의무를 걸머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부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무엇을 해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퇴출 당하는 것도 감수하며 과감한 자기 혁신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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