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연극의 이해   
Understanding Drama & Theatre
정진수 / 김동욱 공저
 

 

       제 1 부 희곡과 공연의 이해 : 정진수

    1. 희곡과 공연의 특성.........................9

    2. 희곡과 공연의 본질.........................17

    3. 희곡의 요소....................................36

    4. 희곡의 형태....................................51

    5. 희곡과 공연의 양식..........................60

    6. 공연의 요소.....................................66

    7. 희곡과 공연의 비평..........................90

    8. 현대연극의 의미..............................103

 

1. 희곡과 공연의 특성

 
희곡은 시나 소설, 수필 등과 함께 엄연히 문학의 한 장르(genre)이다. 곧 희곡은 시나 소설, 수필처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문학의 한 형태라는 말이다. 그러나 희곡은 무대 공연의 재료로 쓰여지기도 한다. 따라서 희곡은 그 것이 문학의 한 장르이자 동시에 무대 공연의 재료가 된다는 이원성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이 같은 희곡문학의 이원성 때문에 때로 희곡은 순수 문학 연구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공연으로부터는 푸대접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희곡의 이원성은 희곡 문학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희곡이 가지는 이원성을 놓치고서는 희곡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희곡문학의 연구자는 희곡의 문학적 측면과 함께 공연의 측면에 대해서도 깊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희곡 가운데는 상연 길이가 지나치게 길다거나 등장인물의 수가 너무 많다거나 내용이 방만하다거나 하는 등 소위 서가 희곡(closet drama)이라고 해서 무대 공연에 적합하지 않은 희곡 작품도 더러 있으나 이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극작가들은 무대 공연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희곡을 쓰게 된다. 따라서 한 희곡이 씌어졌을 당시의 극장과 무대, 배우술, 공연 방식, 극장의 관습 및 관객의 성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연극을 영어로는 'drama' 혹은 'theater'의 두 가지로 다 부를 수 있다. 좁은 의미로 'drama'는 희곡(play)을 가리키고 'theater'는 극장(playhouse)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는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는 '연극'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양자 사이에는 중요한 어감상의 차이가 있다. 원래 'drama'는 그리스어로서 '한다'(to do, to act)라는 의미에서, 'theater'는 '본다'(to see, to view)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들인데 연극을 'drama' 라고 부를 때는 희곡적 측면이 강조되고 'theater'라고 부를 때는 극장적 측면이 강조된다. 그래서 희곡(play)과 공연(performance), 대본(script)과 제작(production), 작품(text)과 무대화(staging), 작가(author)와 배우(actor), 창조(creation)와 해석(interpretation), 이론(theory)과 실제(practice)라는 말들은 이 같은 'drama'의 두 측면을 각기 대비해 주는 말들인 것이다.
일상용어로 사용될 때도 어떤 일을 가리켜 'dramatic' 하다고 표현하면 그 안에 과장된 '행동'이 있음을 뜻하고 'theatrical'하다고 표현하면 그 안에 자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뜻하게 되 듯이 'drama' 와 'theatrical'은 다 같이 연극을 뜻하는 말이지만 'to act'와 'to see'라는 어원에서 오는 각기 다른 뉘앙스가 숨어 있다.
위에서 희곡을 문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공연의 측면에서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곧 희곡을 'drama'로서만이 아니라 'theater'로서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희곡은 감상 예술이면서 동시에 전달 예술(communications art)이기 때문에 전달의 측면이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점은 극작가가 희곡을 쓸 때부터 이미 염두에 두기 때문에 완성된 희곡을 글로 읽을 때에도 독자는 무대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희곡이 무대 공연을 전제로 쓰여진다는 데에서 나오는 희곡 문학의 특성을 살펴보자면 먼저 희곡의 길이부터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희곡이 단지 읽혀지기 위한 것이라면 시나 소설처럼 길이의 제약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희곡은 관객을 앞에 놓고 무대 위에서 상연될 것을 전제로 쓰여지기 때문에 아무리 짧아도 단막극(one-act play)일 경우 20 ~ 30분에서 1시간, 장막극(full-lenght play)일 경우 1시간 30분에서 길어야 3시간 이내에는 끝나는 것이 보통이다. 예외적으로 얼마 전 영국의 <로얄 셰익스피어 극단>이 공연한 "니콜라스 니클비(Nicholas Nickleby)' 같은 연극은 상연 시간이 무려 9시간이나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연극 공연에 적당한 길이는 대개 두 시간 내외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관객이 극장의 객석에 앉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관극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희곡이 무대 공연을 전제로 쓰여지기 때문에 부여받는 특성은 연극 예술의 일회성(ephemerality)에서 온다. 이 것은 비단 연극만의 특성이 아니라, 무용, 음악 같은 공연예술(performing arts) 전반의 특성이기도 한데 공연예술은 시나 소설 또는 그림, 조각처럼 오래 보존 될 수 있어서 두고두고 감상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단 한 번의 감상으로 만족해야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창작자에게는 각별한 부담이 지워질 수밖에 없다. 관객과 단 한 번의 시합으로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극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뿐 아니라 전달의 형식에 대하여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손쉬운 예로 등장인물의 이름도 발음해서 알아 듣기 쉬운 것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며 관객의 기억을 돕기 위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자주 불러줄 필요가 잇을 것이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관객은 똑같은 사항을 세 번은 반복해야 기억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관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해내야 한다. 우리는 장편소설 같은 데서 이런 구절을 흔히 보게 된다. "독자 여러분은 기억하실지 모르나 이 인물로 말하자면 앞에서 잠깐 소개 했듯이..." 그러나 이 같은 수법이 희곡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공연예술의 일회성은 희곡작가에게 또 다른 중대한 제약을 안겨 준다. 그 것은 시인이나 소설가와는 달리 희곡작가는 미래의 관객이 아니라 현재의 관객을 더 중요하게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어쩌면 독자를 아예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극작가는 당장의 관객에게 호소되지 못하면 영원히 사장될 위험이 있다. 물론 희곡은 그 것이 무대 공연의 재료이자 동시에 문학 작품이기 때문에 글로 남아서 뒤에 그 가치가 재평가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 예를 독일의 극작가 뷔히너(Georg Buchner) 같은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한 번 지나간 희곡의 진가가 뒤에 가서 재발굴될 가능성은 시나 소설에 비하여 훨씬 희박한 것만은 틀림없다.
특히 시의 경우라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을 때 온전한 감상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함축성이 짙은 오묘하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지만, 극작가의 경우는 단 한 번의 감상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표현의 명료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이츠(W. B. Yeats)나 엘리엇(T. S. Eliot)의 시극이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것은 비단 표현 방법의 문제만이 아니라 표현 내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간적 차이를 두고 여러 차례의 감상이 가능한 예술이라면 동창적이고 혁신적인 주장이 담겨 있다 해도 언젠가는 설득이 가능하다. 사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첫눈에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관극을 통해서 관객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내야 하는 극작가는 편벽한 주장이나 새로운 사상을 그의 작품 안에 담을 수 없다. 그는 관객 일반이 은연중에라도 이미 믿고 있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 따라서 극작가는 선구적인 사상가일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연극은 가장 보수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입센(Henrik Ibsen)의 <인형의 집(A Doll's House)>이 여성 해방을 주창했다거나 연극으로 상연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이 남북전쟁을 일으켰다고 과장하는 얘기를 듣지만 그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 것은 바로 뒤에 얘기할 연극 예술의 효과 탓이지 그 같은 주장이 연극을 통해서 처음 외쳐졌을 때 대중의 즉각적인 추종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연극 예술이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연극이 협동 작업을 통한 집단 예술이라는 점과 한 장소에 다중을 모아 놓고 전달하는 대중예술이라는 점 때문에 한층 강화된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는 연극이 극단적인 사상을 전파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극의 보수성은 연극으로 하여금 시대의 사상을 다른 어느 분야 보다도 가장 잘 대변케 해준다. 가령 니체의 사상이 서구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받아들여진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했을 때 니체의 저서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출간된 연도로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보다는 니체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극작가인 버나드 쇼(Bernard Shaw)의 희곡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이 '성공적으로' 공연된 때로 잡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이 것은 버나드 쇼가 당시 대중에게 전혀 생소한 사상을 그의 희곡에 담아 그들을 각성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거꾸로 그 때 쯤에는 관객 일반들에게 이미 친숙해진 니체의 사상을 쇼가 그의 작품 안에 담았기 때문에 관객의 지지를 얻었고 연극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뜻이 된다.
연극은 관객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또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연극의 할 일도 아니다. 가르치는 것이 예술의 기능은 아니다. 앞에서 시나 소설이 연극 보다는 선구적인 주장을 담을 수 있다고 한 것은 시나 소설이 당장의 독자 대중에게 호소되지 못하더라도 그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서 후대에 가서 재평가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극작가 보다는 대중을 덜 의식해도 좋다는 뜻일 뿐이다. 그런데 연극을 포함한 예술의 기능은 사상의 전달이 아니라 미학적인 체험을 불러 일으키는 데 있고 이 점에서 연극은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연극이 관객에게 미치는 효과(impact)에 있어서 시나 소설 또는 미술 작품보다는 훨씬 그 강도가 높다.
그 것은 연극이 공연예술로서 가지는 현장성(immediacy)과 집단체험(communal experience)의 양식에서 오는 것이다. 연극은 시나 소설 또는 그림, 조각과는 달리 관객이 창작의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다른 예술의 경우는 창작이 끝난 뒤에 시간적인 거리를 두고 감상자에게 전달되지만 연극은 창작의 순간에 관객이 참여하기 때문에 창작과 전달의 시간이 일치하는 특이한 경험을 관객은 맛보게 된다. 더구나 다중이 한자리에 모여 동시에 똑같은 체험을 공유하는 집단적 체험은 한층 연극의 호소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극장에서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될 때 무대와 객석 뿐 아니라 관객 상호간에도 교감이 이루어 지기 때문에 관극체험은 훨씬 증폭되어서 나타나게 된다.
앞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남북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하는 것도 이 진부한 싸구려 정극(melodrama)이 그 안에 인간의 평등을 고취하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사상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방금 말한 연극의 현장성과 집단 체험이 가져다 주는 강행효과 때문이다. 연극이 선전(propaganda)이나 선동(agitation)의 목적을 위해 자주 이용되고 또 효험을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연극은 관객이 이미 알고 또 느끼고 있는 것들을 재확인 시켜 주며 연극을 통해 재확인된 것을 행동으로까지 옮기게 할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다. 그래서 1920년대에 성행한 표현주의(expressionism) 연극이 극장에서 끝남과 동시에 곧 이어 대부분 노동자, 학생들로 구성된 관객들의 대열이 가두시위로 이어지곤 했었던 것도 이 같은 연극의 특이한 호소력 때문이었다.
끝으로 희곡 작품은 무대 공연을 전제로 쓰여지기 때문에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달리 무대 위에서의 시청각적 효과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극작가는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언어적 표현에만 기대지 않고 무대 공연을 통해 나타나는 시청각적 효과에도 크게 의지하기 때문에 희곡을 글로 읽을 때에도 무대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온전한 감상을 할 수 없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서양 연극과 특히 동양의 고전 연극은 이 같은 시청각적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기 보다는 관약(convention)에 주로 의존했었다. 관약이란 연극 공연에 있어서 관습적으로 행해져 내려오는 무대와 관객 사이의 묵시적인 약속으로서 이 관약을 모르는 초보 관객은 연극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령 셰익스피어극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퇴장했다가 다시 등장하면 동일한 무대라 할지라도 장소가 바뀐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하나의 관약인데 동양의 고전 연극 형태에는 이 같은 관약이 한층 까다롭고 복잡하다. 르네상스 이전의 서양 연극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나 자연현상의 표출 등을 관약에 의존해 온 데에는 물론 무대술의 미 발달 탓도 없지 않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발달되면서 조명, 음향 등의 무대술이 향상되어 가자 연극도 비로서 실내 극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하고 시공의 변화와 자연현상도 직접적인 표현이 가능해지기 시작하여 현대 사실주의 연극에 이르러서는 현실의 모습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 환각주의(illusionism)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연극 무대의 시청각적 효과는 다만 '현실의 환각(illusion of reality)'을 재현해 내는 데에서 그 사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의 분위기나 인물의 심리상태 또는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 보다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큰 몫을 한다. 가령 러시아의 극작가 체호프(Anton Checkov)의 대표작인 <뻐찌 과수원(Cherry Orchardz)>의 마지막 장면에서 들리는 도끼소리나 입센의 <유령(Ghosts)>에서 고아원이 불타는 장면들은 바로 시청각적 효과를 통해서 작품의 주요한 의미를 전달하는 두드러진 예가 된다.
따라서 희곡 독자는 희곡의 대사 뿐 아니라 극작가가 써 넣은 무대 지시문(stage direction)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만 위에서 말한 대로 환각적(illusionistic) 효과에 의존할 수 없었던 고대 희곡에는 무대 지시문이란 것이 없다. 장황한 묘사가 담긴 무대 지시문은 현대 사실주의 희곡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 이전의 희곡 작품들에서 시청각적 표현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연극의 습속이나 관약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하며 대사 가운데 숨어 있는 시청각적 표현을 찾아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극작가는 시공의 변화와 자연현상의 묘사를 극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 대사 가운데 자연스럽게 삽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사를 통한 무대 묘사를 '말에 의한 장식(spoken decor)' 이라고 하는데 그리스극이나 셰익스피어극은 말에 의한 장식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으므로 해서 당시의 연극 관객들은 오늘날의 관객들 보다 높은 상상력을 요구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연극의 6대 요소 가운데 포함시킨 음악(music)과 경관(spectacle)은 바로 이 시청각적 효과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두 요소는 희곡을 이루는 비문학적인 요소들인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만 놓고도 희곡을 단순한 문학 형식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연극 공연의 재료라는 측면에서 희곡이 가지는 이원성이라는 특성을 살펴본 셈이다. 희곡이 시나 소설이나 혹은 다른 예술 장르와 구별되는 특성을 살펴 보았으나 이번에는 희곡과 공연 또한 예술의 한 장르로서 다른 예술분야와 공유하는 일반성 내지 보편성의 측면을 얘기해 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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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곡과 공연의 특성.........................9   

    2. 희곡과 공연의 본질.........................17

    3. 희곡의 요소....................................36  

    4. 희곡의 형태....................................51  

    5. 희곡과 공연의 양식..........................60  

    6. 공연의 요소.....................................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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