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ung Theatre Company


   
연극의 이해   
Understanding Drama & Theatre
정진수 / 김동욱 공저
 

 

       제 1 부 희곡과 공연의 이해 : 정진수

    1. 희곡과 공연의 특성.........................9

    2. 희곡과 공연의 본질.........................17

    3. 희곡의 요소....................................36

    4. 희곡의 형태....................................51

    5. 희곡과 공연의 양식..........................60

    6. 공연의 요소.....................................66

    7. 희곡과 공연의 비평..........................90

    8. 현대연극의 의미..............................103

 

 3. 희곡의 요소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곡의 요소를 구성(plot), 인물(character), 언어(diction 혹은 language), 주제(theme) 또는 사상(thought 혹은 idea), 음악(music), 경관(spectacle)의 여섯으로 나누었다. 이 중에서 음악과 경관은 시청각적 요소로서 문학적인 측면 보다는 연극적인 측면에서 더 잘 얘기 될 수 있는 요소들이므로 마지막 장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나머지 요소들을 차례로 살펴 보기로 하겠다.
 

1) 구성(plot)


구성의 기본 요소는, 희곡의 본질인 행동(action)으로서 구성이란 '행동의 조직(organnization of action)'을 뜻한다. 앞장에서 얘기한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조직하고 배열하는 것이 좋은 희곡을 만들어 주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구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구성은 이야기(story)와는 다르다. 한 이야기 안에는 많은 사건들이 담겨 있으며 이 사건들이 대체로 '일어난 순서(chronological order)'대로 말해 진다. 그러나 구성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건 허구이건 그 이야기를 재료로 해서 그 이야기로부터 극작가가 필요로 하는 사건들만을 선택하여 극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알맞은 순서대로 재배열한 것이다. 평범한 이야기 가운데도 부지불식간에 화자의 의도가 어느만큼 담길 수밖에 없겠지만 구성에 있어서는 극작가의 의도가 일관되게 배후에서 작용한다. 아무리 사실적인 희곡이라 하더라도 구성은 극작가에 의하여 치밀하게 인위적으로 짜여진 것이다.
구성에 대한 벤틀리의 의견을 들어보자.

구성이란 인위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구성은 예술가의 지성이 개재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곧 자연이 혼돈의 상태로 버려둔 사건에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구성이란 고도의 교묘한 예술로서, 말하자면 인생과는 반대되는 개념인데 어떻게 구성이 인생의 모방이 될 수 있겠는가? 구성은 인생의 모방이 아니다. 구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모방적 요소를 포용할 수는 있지만 구성은 동시에 인생의 변조이며 개선인 것이다.

(Plot, then, is nothing if not artificial. Plot results from the intervention of the artist's brain which makes cosmos out of events that nature has left in chaos. Plot being ahigh and intricate example of art, as Art stands in contrast to Life, how can plot also be considered as imitation of life? It cannot. It can incorporate some of those exact imitations which Aristotle mentioned but it is itself an alteration of life and an improvement on it.)

벤틀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구성을 인생의 모방이라고 말한 적이 없음을 또한 지적하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만 구성의 모방(imitation of action)이라고만 말했을 뿐으로서 그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명료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가 빚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은 개연성(probability)의 문제를 설명하면 의외로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을것 같다. 드라마의 사건이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흔히 실제 인생의 모습과 닮아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되지만 드라마의 논리가 현실의 논리와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사건일 지라도 극작가가 꾸며낸 테두리 내에서 일관된 논리를 가진다면 그 사건은 관객에게 납득되고 곧 개연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브로켓(Oscar G. Brockett)은 비사실적인 희곡인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의 <대머리 여가수(Bald Soprano)>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희곡에서 막이 오르는 순간 벽시계가 17번 종을 친다. 그러나 스미스 부인이 9시라고 말하고는 영국 중류 가정 생활의 미덕에 대한 괴기한 연설을 늘어놓는다. 이 같은 시작은 관객들에게 이 연극이 일상적 논리를 포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이 연극 놀이의 규칙들이 알려지고 모든 사건은 그 규칙에 따라서 전개된다. 관객은 극작가가 자신이 만든 규칙을 일관되게 지켜 나갈 것을 기대한다. 만일 극작가가 스스로 만든 규칙에 어긋나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 사건은 납득할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이다.
물론 이렇게 드라마의 사건이 현실의 논리를 떠난 것일 때에도 관객의 현실에 대한 경험은 여전히 드라마를 이해하는 지표로서 작용한다. 위에서 벽시계가 17번 종을 쳤을 때 관객이 이상하다 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것이 관객 자신의 현실경험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문제는 이럴 때에 관객이 "저 연극은 현실과는 틀리므로 엉터리 연극이다." 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되며 "왜 극작가는 저런 이상한 사건을 꾸며냈을 까?" 하고 물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벤틀리가 구성이란 자연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지만 드라마의 사건은 공포, 분노, 기쁨, 슬픔 등 어떤 구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목적성(purposefulness)이 담겨 있어야 한다.
따라서 드라마 속의 모든 요소들은 그 목적에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지 그 목적과 반대되거나 무관한 요소들은 하나도 들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희곡의 구성은 또한 통일성(unity)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희곡의 구성은 완결성(completeness)을 지녀야 할 것이다. 비록 희곡은 인생의 부분을 다룬 것이지만, 한 편의 희곡속에는 극작가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지 아무 전제 없이 결론부터 불쑥 얘기한다거나 문제 제기만을 해놓고 도중에 이야기를 끊어서는 관객은 그의 목적을 알아 챌 수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래서 희곡의 구성은 '시작과 중간과 끝(beginning, middle and end)'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것은 극작가가 할 말을 충분히 다 해야 한다는 즉 완결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말할 뿐, 희곡의 구성이 반드시 기승전결이라는 수학적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희곡의 구성을 도입(exposition), 발단(point of attack), 상승(rising action), 절정(climax), 하강(falling action), 결말(denouement)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매 희곡 작품은 다 독창적인 예술 작품이므로 꼭 이 같은 패턴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며, 이 패턴에 맞는다고 해서 반드시 잘 된 구성이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구성의 구조(plot structure)에 대한 논의는 피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희곡의 구성은 개연성, 목적성, 통일성, 완결성, 등의 원리를 가져야 한다는 설명을 했으나, 이 같은 구성의 원리들은 결국 드라마란 인생과는 달라서 예술가 자신이 부여한 질서와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데서 나온 것들로서, 그 것들은 서로 다른 성질의 원리들이 아니라 하나인 셈이다.
이 같은 구성의 원리를 염두에 두고 이제는 구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차례이다. 구성이란 한마디로 단편적인 행동을 연결하는 것인 만큼 구성의 방법은 결국 이들 개별적인 행동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것을 가리킨다.
가장 손쉬운 구성의 방법은 인과(cause-and-effect)에 의한 사건의 배열이다. 따라서 극작가가 극의 첫 부분에서 극의 상황과 조건, 그리고 인물들의 동기를 설정하면 극의 나머지 부분들은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이끌어져 나오게 된다. 극의 뒷부분은 항상 앞부분의 논리적 결과가 되는 것인 만큼 이 같은 구성의 방법은 사건의 배열을 '일어난 순서'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제약이 따른다.
두 번째 구성의 방법은 중심인물을 구심점으로 해서 사건이 엮어져 나가도록 하는 방식인데, 드라마속의 각 행동이나 사건들 사이에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그 것들이 한결같이 동일한 인물에 관한 것인 만큼 극의 통일성은 유지될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두 번째와 같은데 다만 구심점이 등장인물이 아니라 극에 담긴 사상(idea)인 경우이다. 가령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비판하려는 생각을 담은 희곡이라면 극 속의 개별적인 장면들 사이에는 서로 아무런 논리적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매 장면들이 주제와 관련을 가지는 한 극의 통일성은 유지되는 것이다.
희곡의 구성에는 또 몇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단순구성(simple plot)과 복합구성(complex plot)을 들 수 있는데, 앞의 것이 단순한 극적 상황을 다루는 반면에 뒤의 것은 무수한 사건의 얽힘(intricacy)과 꼬임(complication)과 음모나 책략(intrigue)을 담아서 사건이 복잡하게 전개되도록 꾸민 것이다. 또 단일 구성(single plot)과 이중구성(double plot)이 있는데 앞의 것이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반면에 뒤의 것은 한 희곡 안에 주구성(mainplot)과 부구성(subplot), 곧 본 줄거리와 종속 줄거리의 두 사건을 동시에 다루는 것을 말한다. 다만 이중구성의 경우 부구성이 주구성과 무관한 독자적인 줄거리를 이루어서는 안 되고 주구성의 의미를 확대, 부연해 주는 종속적인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 구성이라 하더라도 사건은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고 이중구성이라 하더라도 동일 상황에 관한 것이라면 단순구성이 가능한 것이다.
끝으로 해이한 구성(loose plot)과 긴밀한 구성(tight plot)이 있을 수 있는데, 인과에 의하여 사건이 배열되어 있을 때는 극의 구성이 긴밀해 보이고 인물이나 사상을 중심으로 극의 구성이 꾸며졌을 때는 각 장면들이 독립된 에피소드(epispde)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구성이 해이해 보인다. 그래서 그와 같은 구성을 흔히 에피소드적인 구조(episodic structure)를 갖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같은 극에서는 사건이 진전하는 느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적(static)인 느낌을 주고 관객의 관심은 따라서 사건 보다는 인물이나 사상 또는 극의 분위기(mood 혹은 atmosphere)에 쏠리게 된다. 그렇더라도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성공적일 수 있으려면 배후에 반드시 행동이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정적인 극을 '간접 행동의 극(drama of indired action)'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행동이 표면에 직접적으로 표출되지 않기 때문에 간접 행동의 극은 성공을 거두기 매우 힘들고 일반 관객들로부터는 환영받기 어려운 것이다.
 

 2) 인물(character)

 
영어의 character'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성질들의 총체(the sum of qualities or features, by which a person or thing is distinguished from others)라고 되어 있다. 사람으로만 놓고 보자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그 사람의 특징적인 성격을 뜻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반드시 남과 구별되는 성격적 특성(character trait)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character'를 '성격'이라고 하기 보다 막연히 '인물'이라고 옮기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그리고 극작가가 극중 인물을 만들어 내는 행위를 가리켜 성격 창조라고 써오기도 했지만, 같은 뜻에서 이 말 역시 인물구현(characterization)이란 말을 쓰기로 한다.
극작가가 인물을 그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른 등장인물로 하여금 그 인물에 대하여 묘사하도록 하는 것이겠으나, 앞에서 말한 대로 드라마는 객관적인 예술인 만큼 그 다른 인물의 묘사를 독자나 관객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다른 인물은 그 나름의 편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다른 인물의 묘사가 참고가 됨은 물론이다.
이 보다는 그 등장인물 자신의 말이 그 인물에 관하여 더 많은 것을 알 게 해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 인물의 자기 성찰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사람의 언어 행위가 그 사람에 관한 많은 중요한 정보를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인물에 관한 가장 확실하면서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그 인물의 행동일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그 인물의 됨됨이가 가장 여실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따라서 극작가는 극중의 행동을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인물을 그려 보여준다. 따라서 드라마의 본질인 '행동'이란 말을 사용하여 인물을 정의하자면 '행동의 주체(subject of action)'라고 할 수 있다.
극작가가 인물을 그려내는 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어느 인물을 구석구석까지 소상하게 그려내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인물처럼 생동감 있게 그려낼 수도 있고 아니면 매우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그려 보일 수도 있다. 앞의 인물의 개성적 인물(individual charater) 혹은 입체적 인물(three dimensional character) 또는 원만한 인물(recoind character)이라고 한다면, 뒤의 인물은 유형적 인물(type character) 혹은 평면적 인물(flat character)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개성적 인물을 성공적인 인물 구현이라고 보고 유형적 인물 구현에 비하여 우월한 것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벤틀리에 의하면 개성적 인물도 따지고 보면 유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개성적 인물이라 하더라도 극중 인물은 실제 인간의 모습과는 같을 수가 없다. 극중 인물은 극작가의 의도에 의하여 역시 선택되고 강조되고 배열된 인물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 인간은 어떤 사명을 띄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지만 극중 인물은 극작가가 부여한 극중에서의 분명한 기능(function)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등장인물은 그 기능에 알맞도록 그려져야 한다. 가령 극중에 지나가는 군인이나 단지 저녁 식사시간을 알리기 위해 잠깐 등장하는 하녀는 자세한 성격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기에 비해서 주인공의 경우는 비교적 자상한 묘사를 필요로 하겠지만, 그 것도 작품이 의도하는 범위 내에서의 일이지 그 인물에 관한 온갖 묘사가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령 불후의 인간상을 창출한 극작가로 추앙받는 셰익스피어도 등장인물의 나이나 생긴 모습 따위까지 상세히 그리지는 않았다. 그 같은 불필요한 묘사는 오히려 작품의 의도를 흐리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작가의 생각이나 구체적인 작품에 따라서는 유형적인 인물구현이 오히려 바람직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적인 인물 구현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흔히 드라마와 인생을 혼동하여 맥베드 부인의 자녀는 몇 명일까, 하는 식으로 극중인물을 마치 실존한는 인간인양 분석하려 드는오류가 빚어진다.
 

 3) 주제(theme or idea)

 
주제란 한마디로 작품의 전체적 의미라고 할 수 있으며,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극 행동의 의의(significance of the action)' 라고 할 수 있겠다. 주제는 작가가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모든 작품에 다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극작가가 희곡을 쓸 때 '어떤' 인물의 '어떤' 행동을 일관된 기준에 의해 선택해서 그렸기 때문에, 일관된 극 행동은 필연적으로 인생에 대한 해석을 가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된 극 행동과 인생에 대한 해석은 표리의 관계를 가진다. 실제로 극작가가 희곡을 쓸 때에는 이들 중의 어느 쪽에서부터 시작되어도 상관이 없다. 이지적인 극작가라면 인생에 대한 그 자신의 해석이 먼저 떠올라 다시 그 것을 잘 대변해 줄 인물과 극행동을 구상하는 순서로 작품을 쓰기 쉬우며, 감성적인 극작가라면 어떤 인간의 행동에 관심이 쏠려 그 같은 행동을 일관되게 그려 나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에 대한 해석이 담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나 관객 쪽으로 보면 항상 극 행동이 먼저 전달되고 극 행동을 보아 나가는 동안에 그 작품의 의미는 뒤에 씹히게 된다.
그런데 성공적인 희곡이라면 그 희곡속에 그려진 행동들이 관객들에게 납득되고 공감받아야 한다. 이 점은 이미 <2. 희곡과 공연의 본질>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여기서는 극 행동을 납득할 수 있게 해주고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곧 주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관객은 희곡을 읽기 전에 이미 그 작품의 주제에 동의하고 있어야 한다. 극 행동에는 공감하면서 그 행동의 밑받침인 주제에 반대할 수는 없다. 그 극의 주제에 공감한다는 것은 극을 보는 동안 관객은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벤틀리를 인용해 보기로 한다.

재인식이 첫 인식보다 낫다. 훌륭한 얘기는 우리가 이미 들어본 얘기다. 곧 좋은 얘기꾼은 다시 얘기하는 듯한 효과를 노리며, 좋은 극작가도 재현해 보여주는 듯한 효과를 노린다.

Rocognition is preferable to cognition : a good is one we have heard before : that is, a good storyteller aims at the effect of re-telling, a good dramatist at re-enactment.

그리고 옛 향기가 항상 새롭게 들린다면 새 얘기도 항상 옛 얘기처럼 들려야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다. 요점은 곧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And if the old stories are ever new, new stories must always be old if they are to take hold of us, It is a question of our only being able to learn what we already know.

우리가 (드라마에서) 원하는 것은 머리를 위한 지식이 아니라 가슴을 위한 재확인이다.

What we (from drama) is not much information for the head as reassurance for the heart.

위에서 인용한 세 구절은 이미 앞장에서 한 얘기를 부연해 주는 것으로서 희곡은 예술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는 매체가 아니라는 점과, 희곡의 주제는 실상 우리가 이미 무의식적으로라도 동의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과, 끝으로 아는 것을 다시 확인 받는 것은 가슴에 대한 호소로서 희곡은 아무리 철학적인 혹은 과학적인 주제를 다룬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슴에 호소하는 예술 매체라는 점을 다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극작가가 관객이 이해 못하는 주제를 잡았다면 관객은 주제를 이해 못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 행동을 납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느 연극을 아주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보고 나서 그 연극의 주제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그 연극을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보았다는 것 이상 그 연극의 주제를 이해했다는 증거는 없다. 때로 어느 연극의 주제는 말로 잘 설명하면서도 막상 그 연극을 즐겁게 관람하지 못하는 평론가들이 있는데 실상 그는 그 연극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다. 일반 관객이라면 연극을 즐겁게 보는 것으로 족하지만 연극 학도라면 그 연극의 주제를 조리 있게 설명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를 말로 설명할 줄 알아도 연극을 즐기지 못하는 관객은 가장 불행하다.
때로 주제가 없어 보이는 희곡이 있다. 가령 관객에게 하루 저녁의 오락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목적이 없어 보이는 정극(melodrama)의 경우에도 알고 보면 권선징악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강력한 주제가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본다. 그러나 유미주의(aestheticism)의 연극의 경우는 좀 다르다. 유미주의는 순수한 미학적 체험만을 목적으로 삼는 유파로서 일체의 도덕적 암시를 일부러 피해서 순수행동을 그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극단적인 생각은 실천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때의 예술적 시도로서 끝나 버린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을 그리고자 할 때 도덕적 암시(moral implication)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희곡의 주제란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와 같은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란 상상할 수 없으며 뿌리가 없이는 나무가 생장할 수 없다. 그러나 나무의 효용성, 곧 우리가 나무를 심는 이유는 뿌리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열매나 꽃을 보기 위한 것이다. 그 열매나 꽃이 극 행동이며 우리가 희곡을 읽고 연극을 보는 이유는 극 행동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곧 주제는 극 행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자기의 존재는 될 수록 감추고 싶어한다. 주제가 표면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서툰 계몽극 따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주제를 따지는 것은 현대에 와서 현대연극이 난해성을 띄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현대 연극의 극행동이 쉽사리 납득되지 않기 때문에 주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지 주제를 알기 위해 연극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007> 같은 영화를 보면서 주제를 묻는 사람은 없다. 이 드라마 속에 주제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극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하등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007>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마지막에 악당과 타협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일확천금을 하여 미녀와 함께 사라진다면 관객은 당황해 하고 이 드라마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따지고 들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가 항상 승리한다는 주제가 일관되게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제는 나무 뿌리와 같은 것인 만큼 주제 자체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희곡들, 가령 카뮈나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사상을 담은 작품들의 경우는 주제 자체가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그 행동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에 접근해 가는 것이지 그들의 이론적 저서들처럼 생경한 주의 주장과 맞닥뜨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작품들은 다시 비유하자면 감자와도 같다. 감자는 뿌리를 먹기 위한 것인데 감자로 하여금 싹이 나게 하는 것도 바로 뿌리이다. 이 뿌리는 하나 속에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카뮈나 사르트르의 희곡이 감자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 희곡의 극 행동들을 있게 한 것도 주제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희곡을 읽게 만드는 것도 주제의 매력이다. 물론 감자에도 꽃은 핀다. 그러나 감자꽃은 즐길 만큼 아름답지는 못하다. 카뮈나 사르트르의 희곡에도 등장인물을 포함한 다른 모든 희곡의 요소들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것들이 그들의 사상만큼 탐스럽지는 못하다. 그래서 감자의 효용성은 고작 뿌리를 먹는 데서 끝나게 되듯이 카뮈나 사르트르의 희곡도 그들의 사상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주는 이상의 연극 예술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희곡문학의 역사 속에서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말았다.
 

 4) 언어(language or diction)


희곡의 언어는 드라마의 본질인 행동이란 말을 대입시켜 정의하자면 '행동의 수단(medium of action)이다. 무대 상연 이전의 상태인 희곡은 모두 언어로 되어 있다. 그리고 희곡의 언어는 대사(dialogue)로 되어 있다. 물론 희곡에는 무대 지시문(stage direction)이 있기는 하지만 이 것은 공연자에게 그 희곡의 올바른 공연을 돕기 위한 조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무대 공연 때에는 당연히 삭제되는 것이다. 버나드 쇼같은 극작가는 긴 무대지시문을 즐겨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것은 그의 기벽에 속하는 것일 뿐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는 되지 못한다. 만일 대사로 말해야 할 것을 무대 지시문에 삽입했다면 그 것은 그만큼 극작가의 무능력을 증명하는 것밖엔 안된다.
대사는 'to converse' 란 그리스에서 유래된 말인데 둘 이상의 화자(speaker)가 주고 받는 말이다. 그리스 최초의 극에는 한 사람의 배우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배우는 코러스로 등장하는 군중들과 주고 받는 대화의 형식을 취했었다. 그러나 현대의 일인극(mono-drama)에는 오직 한 사람의 등장인물밖에 없기 때문에 대사는 직접 관객을 향한 서술 아니면 독백의 형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내면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극이 진행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극은 두 사람 이상의 대화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대화란 상대방을 의식한 말이기 때문에 대사는 서술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극 대사는 그 것이 운문으로 쓰였건 산문으로 쓰여졌건 현장감 있는 생동하는 언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길이가 간결해야 하고 의미 전달이 명료해야 한다. 그리고 극의 상황과 말하는 인물에 적합하게 쓰여져야 한다. 긴박한 상황에서 설명적인 대사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며 인물의 교육 정도나 환경 또는 당시의 심리 상태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는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대사는 희곡의 개연성의 수준(level of probability)과 일치해야 한다. 사실적인 극이라면 친숙한 일상적인 화법을 쓰는 것이 옳겠지만 비사실적인 극에서는 오히려 양식화된 언어 사용이나 시적인 표현이 더 적합하게 느껴질 것이다.
물론 사실적인 산문극이라고 해서 시적인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실적인 효과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교묘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실상 모든 희곡의 대사는 그 희곡이 아무리 사실적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인생의 언어보다는 추상적이고 양식화될 수밖에 없다. 극작가는 항상 언어를 면밀히 선택하고 강조하고 배열하기 때문에 연극 언어는 실제 인생의 언어 보다 더 정교하고 조리 있는 언어가 될 수밖에 없다. 일상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하여 극작가는 일부러 사이(pause)와 침묵과 더듬거림과 말 실수(slip of tongue)와 심지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것들은 모두 용의주도하게 특수한 효과를 겨냥한 것이지 실제 인생에서처럼 단지 부주의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대사는 언어이기 때문에 극작가는 작품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또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시인이나 소설가 못지 않게 언어예술가들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적 기법들을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직유(similie)나 은유(metaphor) 같은 비유법에서부터 상징(simbol)이나 우의(allegory)를 비롯하여 말의 리듬과 템포를 조정하여 극의 정조를 살리기 위한 온갖 운율적 기법(metrical device)들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희곡의 대사에는 몇 가지 관약에 의한 대사법도 있는데 독백(soliloquy), 방백(aside) 같은 것들이 그 것이다. 독백은 화자의 마음속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고, 방백은 옆 사람이 듣지 못하는 혼잣말인데 관객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대사법은 상식적 논리에는 어긋나기 때문에 현대 연극에는 잘 쓰이지 않게 되었으나 연극 자체가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인 것처럼 보아 달라는 관객과의 약속인 만큼 작품의 요구에 따라서 극작가는 얼마든지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연극의 대사는 두 사람 이상이 서로 주고 받는 대화와 독백, 방백 뿐 아니라 등장인물이 직접 관객에게 말하는 서술, 여러 인물이 한꺼번에 산문으로 말하거나 운문으로 읊어대는 합송(choral ode)과 노래 등 배우들의 입을 통해 소리나는 모든 감탄, 울음 등의 비언어적 소리까지 포함된다고 하겠다. 특히 현대 연극 가운데 전위적, 실험적 연극에서는 논리적인 언어보다 이 같은 비언어적(non-verbal) 소리, 심지어 기성, 괴성, 비명 등의 소리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여 이런 종류의 연극을 비언어적 연극(non-verbal theater)이라고 한다.
연극의 대사는 희곡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글로 쓰여진 것만을 말하지만 희곡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는 글로 쓰여진 대사만이 아니라 쓰여지지 않은 행간 또는 배면의 의미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것을 가리켜 '숨은 의미(subtext)'라고 한다. 극 중 인물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대사로 쏟아놓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겉으로 하는 말과 내심은 정반대 일 수도 있다. 따라서 희곡 작품의 감상은 순진한 마음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감정적으로 개입되더라도 한편에서는 검사나 형사처럼 냉철하게 따져 가면서 감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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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희곡과 공연의 본질.........................17

    3. 희곡의 요소....................................36  

    4. 희곡의 형태....................................51  

    5. 희곡과 공연의 양식..........................60  

    6. 공연의 요소.....................................66  

    7. 희곡과 공연의 비평..........................90  

    8. 현대연극의 의미..............................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