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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 단 소 개

민중극단에 대하여. 1999 년 '부부학 특강' 프로그램에서


민중극단(Minjung Theatre Company)은 1963년 6월에 프랑스 코메디 "달걀"을 가지고 "극단 민중극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초대 대표인 극작가 이근삼씨를 위시하여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온 연출가 김정옥,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연출겸 배우 양광남씨와 배우 최명수,나옥주,오현주,박근형,이영주 등 신진기예들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민중극단은 1960년에 창단된 극단 실험극장에 이어 두번째로 창단된 60년대 동인제 극단이었다.

화려한 동인제 극단의 등장으로 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60년대에 민중극단은 소위 "유학파"로 지칭되며 구미의 극작가들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도 지식층들에게 어필하는 하이코메디를 많이 공연했고 이근삼, 박조열씨 등의 풍자적희극을 선보여 타극단들과 차별성을 보였다. 이는 당시의 연극이 소수 애호가들만을 대상으로한 소인극 활동에 머문데 대한 반발로서 보다 넓은 지식층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시도였다. 그런 뜻에서 극단 이름도 "민중"이라고 지었는데 70년대 이후 민중이란 단어의 의미가 정치성을 띄면서 변질되어 종종 민중극단이 운동권 연극단체로 오인받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극단의 이념이 있다면 그 것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난해한 실험적 연극을 지양하고 동시에 저급한 상업극을 배격하면서 양식있는 건전한 상식인들에게 연극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연극을 정성들여 세련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후 민중극단은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를 비롯하여 "토끼와 포수", "국물 있사옵니다.","실과 바늘의 악장", "연인안나" 등의 작품들을 1년에 평균 1작품씩을 공연하면서 1970년까지 활동을 계속했으나 그 후 1974년 12월에 재창단하기까지 휴면기에 들어갔다.극단 자유를 창단하여 민중을 떠난 김정옥씨를 위시하여 창단멤버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민중은 활력을 잃었다.

그러다가 1974년에 민중의 단원이던 MBC-TV의 프로듀서 이효영씨와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실험극장에 합류해 있던 정진수씨가 주축이 되어 기획자 구자홍씨와 배우 박봉서시 등을 영입하여 이효영씨를 대표로 재창단을 보기에 이르렀으며 그 해 12월에 "우리는 뉴해이븐을 폭격했다."를 가지고 재창단 공연을 가졌다. 재창단 이후 민중극단은 가위 폭발적으로 활력이 불어나서 1997년까지 24년 동안에 무려 260회(동일 작품의 재공연, 지방공연 포함)이상의 공연을 가져 매년 평균 10편 이상 공연을 했으며 그동안 무대에 올린 작품수만 해도 75편이 넘는다.

민중극단의 공연기록에 나타나 있듯이 공연된 작품의 성향도 매우 다양하다. 셰익스피어, 몰리에르같은 고전은 물론 영, 미, 이탤리, 러시아, 스페인, 일본 등 세계각국의 주목받는 최신 현대 희곡작품들의 국내초연을 어느 극단보다 가장 많이 공연했으며 국내 극작가들의 창작희곡도 꾸준히 공연하면서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대형 뮤지컬 작품들의 공연을 통해 연극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그런가하면 "신데렐라" 같은 소극장용 어린이 뮤지컬을 개발하여 아동극붐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간중 민중극단이 쌓아올린 업적이라면 무엇보다도 재능있는 배우들을 배출해낸 것을 들 수 있겠다. 연극계의 스타로 부상한 윤석화를 비롯하여 이승철, 윤주상, 최종원, 박봉서, 이인철, 주용만, 양금석, 김지숙, 김혜옥, 방은진, 최은미, 윤정원, 강애심, 이영숙, 강지은 등이 민중의 단원시절에 연기자로 성장했다.그밖에도 민중이 배출한 수많은 연기자들이 현재 연극계에서 중견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20년만에 다시 대표 맡은 이근삼씨. 1983년 "게사니" 프로그램에서

1963년 김정옥, 양광남씨 등과 함께 소위 해외파로 민중극단의 창단동인이자 초대 대표직을 맡았던 이근삼씨가 20주년을 맞아 다시 대표직을 맡아 이채를 띄우고 있다.
대학의 교직을 맡고 있는 외에 평소 공직을 싫어하여 ITI에 조차 가입하지 않은 이근삼씨는 금년에 들어 펜클럽 부회장에 본의 아니게(?) 선출되는 데 이어 극단 대표까지 맡아 갑자기 감투세례를 받은 느낌. 대표는 맡았으나 실제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극계 주변의 상투적인 추측과는 달리 지난 8일 서울근교 문수암 계곡에서 가졌던 신 구 민중단원 총회 겸 단합대회에서 30여 단원들에게 실질적인 대표역할을 수행할 결의를 밝힌 바 있는데 민중과의 인연은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언했다. 이 자리에서 전임 대표 정진수, 박봉서 등 까지 현역 단원으로 참석하여 한 극단에 대표경력을 가진 사람이 셋이나 되는 유일한 극단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는데 대표를 그만 두면 극단 일선에서 후퇴하는 극계 풍토를 돌아볼 때 음미할 가치가 있다는 것. 민중은 대표자리가 빈번히 바뀌는 극단이기도 한데 내년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효영씨가 귀국할 예정으로 있어 이렇게 되면 한 극단에 대표 경력자가 넷으로 불어나서 더욱 이채를 띌 것 같다.

 

 ※ 한 번 만든 홈페이지 불변이 아니라 매우 유동적이어서 어느 때엔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 라는 글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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