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울 연 극 제  Seoul Theatre Festival                       자유게시판   관극후기  

   서울연극제 부활을 축하합니다.                                                                                        자료실, 공지사항, 새소식

 1977 년 대한민국연극제를 시작할 당시의 인사말

1977 년 9 월 9 일.
연극회관 세실극장에서
그 첫 막을 연 제 1 회 대한민국연극제.

이리 돌아보아도 번역극, 저리 둘러보아도 번역극.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마다 해외극작품인 때에 막을 열 게 된 '대한민국 연극제'.
번역극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보는 것도 있지만 모르면서도 무작정 보게 되는 작품들도 있는 것을 관객들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던 1970 년대.
공연장도 많지 않고, 공연장 조건도 좋지 않고.
그래도 연극이 좋아서 보러 다니기를 서슴치 않았던 1970 년 대 후반의 관객들.

이런 때에 막을 열 게 된 '대한민국연극제'.
그 첫작품으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며 극단 광장의 대표인 이진순씨의 연출작 '화조' 가 관객들 앞에 선 보인다.

1976 년 1 월.
월간 한국연극 제 1 호가 탄생.
창간사의 제목이 <연극과 사회의 가교가 되도록>이라는 이진순씨의 글이다.
5월호까지 권두언으로 이진순씨의 글이 게재되고, 그 후 권두언이 눈에 띄지 않게 된다.

1977 년 8월.
'대한민국 연극제'를 앞둔 좌담이 권성덕, 김금지, 김도훈, 이강백으로 이루어 진 걸 '한국연극' 통권 목차 색인집을 통해 알 수 있다.
1977 년 9월호와 10월호를 통해서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하는 작품 9 편이 2 회로 나누어 소개되고,
'대한민국 연극제'를 끝낸 후 1977년 12 월호에서 정진수, 서연호, 유일봉, 이반, 이무철, 이태주의 평가좌담이 있었던 걸 확인할 수 있다.

1977 년 '제 1 회 대한민국 연극제'가 1987 년 제 11 회부터 '서울연극제'로 명칭이 변경.

1977 년도, 처음으로 '대한민국연극제'를 시작할 당시의 일을 알아야만 되겠기에,
대한민국 연극제 제 1 회 때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첫 작품 '화조'에서 이 연극의 연출을 맡고 또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기도 했던 이진순씨의 글을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며 공개의 어려움을 감수.
1977 년의 글을,
우리 이 시대의 인터넷으로 끌어내다.
여러분과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세로로 작게 써있는 오래 된 글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서 기록.

이진순씨의 글을 통해서,
'대한민국 연극제'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고, 그 후에 올려지는 '오판' 의 작가이면서 연출을 맡고 극단 '산하'의 대표이기도 한 차범석씨와 '사자와의 경주'를 공연한 민중극단 대표 이효영씨의 인사말을 복사.

모두 세 분의 글을, 오래 된 프로그램에서 찾아 네티즌 여러분들 앞으로 선사. 
'서울 연극제' 부활에 의미가 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
 


제 1 회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하면서.

극단 광장 대표 : 이진순(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화조'는 비단 한국 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의 일생이라기 보다, 개화기의 여성 선각자로서 겪지 않으면 안되었던 인간사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가는 데는 순탄한 길 보다 풍파를 겪는 것이 예사이다.
그 풍파의 감도가 어느 정도냐가 문제이다.
한국의 개화기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자의라기 보다 타의에서 개항되므로서 닫혔던 문이 열리고 봉건에서 개안하게 된다.
요는 이 개안을 통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이 서구의 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이로 인하여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이 이 나라의 끓는 젊은이들에게 희망 보다는 좌절감을 안겨주었던 절망의 시대였다.
나혜석은 바로 이런 시대에, 그 것도 여자로서 화단에 몸을 담음으로서 그녀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굳이 나혜석의 일생을 사실적으로 따라간다기 보다, 그러한 민족의 수난기에 처했던 이 땅의 선각자들의 인생행로를 나혜석을 통하여 시대보다 앞섰던 인간이 뒤진 사회와의 틈바구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좌절된 여성상을 그려보겠다는 것이 이번 연극의 초점이다.

개막 전에 연출자의 말이 프로그램에 실리는 것이 관례로 되어 매 공연마다 연출의도라든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상례가 되어 주욱 그렇게 해왔다.
사실 연출자라는 것이 작가의식 - 즉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글로서 자신의 방향과 작업과정을 피력하는 것은 어쩌면 연출작업보다 더 힘겨운 일이고 또 명문장이라 할지라도 무대를 보여주듯이 뚜렷이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글은 글로서 가치가 있고 연극은 연극대로 가치가 있으므로, 어떤 의미로서는 연출자는 무언으로 연극을 무대에 성실히 올려 놓으면 그만인 것 같다.
그런 뜻에서 나도 방향이라든가 작업에 관한 얘기는 더 늘어놓지 않으련다.
다만 이번 공연이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이고, 그 첫 번째 개막이므로 부담감 같은 것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말하기를 창작극 부재라고 하고 기근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작가의 능력 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질없는 얘기는 다 한쪽만 보고 왈가왈부하는 것이지 그 반대 쪽에는 전연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데서 기인된다. 왜 창작극이 부재하며 기근이며 작가의 능력이 문제가 되는가?
신연극 70 년밖에 안되는 짦은 역사 속에서 이룩된 우리의 실적에 비추어 같은 년수의 타국 중 이 보다 앞선 나라가 있는가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대체로 자기 것을 천시하는 버릇이 우리들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서 걸핏하면 부재니 기근이니 문제성이니 하는 데, 그래도 70 년 쌓아올린 실적은 그 나름대로 인정해야 하고 또 우리나라 실정을 십이분 감안하면서 평을 해야 할 줄 안다. 이 건 양식의 문제다.
요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거론되어야 하며, 또 그 것을 위하여 애정있는 충언이 있어야 할 줄로 안다.
한국 연극도 성년기에 들어섰다. 진짜 고민은 이제 부터인 바, 산적한 문제들을 성급히 처리하려고 하지 말고 차곡차곡 끈기있게 여유있게 그리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접근해 가야 할 줄 안다.
예술의 길은 영원한 것. 하루 아침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한민국 연극제는 창작극 진흥을 위해서나, 작가의 의욕을 북돋아 주는 권장책으로서나, 또는 창작극을 통하여 연극계가 새로운 정열을 쏟을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모처럼 시작한 연극제는 반드시 참가하는 극단만의 연극제가 아니라 전연극인의 연극제가 되어야 하며 모든 시민들 관심 속에서 이루어지길 원한다. 이 첫 번 제전이 계속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연극제의 체모가 확대되는 전통의 기점이 되길 바란다.
 


창작극 수난시대

 극단 산하 대표의 인사말 : 차범석('오판' 작 / 연출)


며칠 전 어느 잡지사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여기자의 목소리였다.
가을에 있을 제 1 회 '대한민국연극제'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여기자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대한민국연극제, 하면 번역극도 상연하면 좋을 법한데 왜 창작극만 상연하는 것이며, 요즘 좋은 창작극공연이 왜 없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두 가지에 대해서 약간 불쾌감을 느끼면서 대답을 했다.
첫째 '대한민국연극제' 라는 행사의 발상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발족한 이래 3 년 동안 연극부문을 위해 지원해 오던 '창작극지원'의 한 방법을, 변경한 것 뿐이다. 바꾸어 말해서 종전에는 창작극을 공연하겠다는 단체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일정한 지원금을 사전 지원했으나 그 시행결과 비평가들의 의견도 그러하고 연극계 주변의 의견도 공연결과를 본 다음 보다 알찬 극단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사후지원이 좋겠다는 데서 오는 방법 수정인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여기자는 번역극도 공연하면 좋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었다. 나는 화를 발칵 내며 그럼 극단마다 번역극을 채택하지 누가 창작극을 상연하려고 할 것인가 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이 여기자도 이미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오염된 거라고 진단을 내버렸다.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우리 연극계의 가장 시급하고도 중대한 문제. 좋은 창작극이 없다는 것.
이미 이 땅에 신연극이 심어진 70 년 전 부터의 숙제이기도 하다.
극작가 없으니까 희곡이 없다는 뜻으로도 풀이가 되겠고 희곡을 써도 외면을 당하니까 없다고도 보는 일종의 악순환의 일면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이유가 어디에 있건 창작극이 빈곤하니까 극작가들로 하여금 희곡을 쓰게 하고 극단으로 하여금 창작극을 공연케 하고, 그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좋은 창작극에 접하게 하자는 의도는 그 누구도 부인 못할 공리이자 철칙일 게다. 그런데 왜 번역극에도 지원금을 주자는 의견이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젊은 관객들이 외국의 새로운 경향의 희곡이나 연극에 흥미를 느낀다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 것은 왕성한 학구열이나 지식 흡수의 의욕적인 발로일 수도 있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호사취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연극' 이나 '민족연극의 수립' 이라는 점에서 볼 때 언젠가는 보다 알찬 창작극의 발견이나 정립은 너무나도 당연한 과제이자 투시점일 게다. 그런데 현재의 창작극 수준이 외국의 희곡 보다 훨씬 뒤처진다 해서 번역극을 내세운다면 언제 창작극이 나오며 언제 민족연극이 정립될 것인가 말이다. 아니 사실은 그 게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여론조사도 그러했고, 작년 말 '서울대학신문'의 여론조사도 그러했고, 극단 '현대극장'의 여론조사에서도 관객들은 번역극 보다 창작극을 더 보고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반응은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이자 반성이요, 격려이자 채찍질인 것이다. 그런데 일부 비평가나 저너리스트들은 극작가를 헐뜯고 창작극을 얕잡아보고, 그래서 번역극에 친숙해지는 게 마치 문화의식이나 미의식이 높은 양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어디서 오는 가학적 취미인지?
아니 연극인 자신들까지도 창작극을 외면하고 있다는 실정은 심각한 병폐이기도 하다.
어느 연출가든,
창작극과 번역극에서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물으면 서슴치 않고 번역극을 택한다.
창작극을 했다간 실패하게 되고 관객이 안들면 그 책임이 마치 연출가에게 있는 양 오해를 받기 싫으니 번역극을 택하는 게 안전하다는 견해들이다. 그래서 연출가는 창작극을 공연하기를 꺼려하고 예술성이 높고 문제의식이 깊은 번역극을 택하려는 안일주의가 이제 뿌리 깊은 고질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그 연출가들은 극작가들 이상으로 문학정신이나 문제의식이 높다는 뜻일까? 그 연출가들의 예술세계는 세계적 수준급인데 극작가들은 수준미달인가 말이다. 한국연극에 있어서 극작가가 써놓은 희곡만 저질이고 연출, 연기, 미술 기타 모든 부문은 앞서고 있는가 말이다.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실력이 없거나 안일주의로 흐르는 연출가일수록 번역극을 택한다.
자신의 무능이나 무력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 세계적 대작, 명작, 문제작을 골라내서 심지어는 자기도 모르는 내용의 전위극이니 부조리극을 코에 걸기 십상이다. 우리는 모두가 부족한 것이지 결코 창작희곡만이 그 책임을 질 문제가 아니다.
아니 부족하니까 함께 달라붙어서 고치고 다듬고 어루만져서 더 좋은 창작극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창작극은 처음부터 재수없는 존재로 밀어부치는 버릇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뿐인가. 좋은 창작극을 재상연했더니 이른 바 '리바이벌' 이라고 트집을 잡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나 '모리에르'의 희곡은 해마다 해도 괜찮고 창작극은 두 번 하면 그 건 재탕이라고 핀잔을 주는 버르장머리는 누구에게서 배운 논리인가?
쓸 만한 창작극이면 더 자주 상연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더 다듬어 가는 게 사랑이 아닐까?
이름에 현혹되고 유행에 떠밀려 살아가는 얄팍한 지식의 수렵인들이 창작극을 헐듣고 무차별폭격까지 하는 수난시대에서 나는 새삼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일어선다.
내가 이 땅에서 배울 것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할 일이 태산 같고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연극제의 의의

이효영(연출가, 극단 대표)


내년은 한국의 신극이 70년을 맞는 해이다. 이 70년의 역사는 우리의 선지적인 예술인들이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밑거름으로 하여 이 땅에 연극문화를 수립하기 위하여 애써온 역사이다. 민족사의 수난 속에서도 우리 예술인들은 불굴의 의지로서 예술의 명을 지켜온 것이다. 그들이 일구어 놓은 예술적 유산이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간 사람들이 남겨 놓은, 아무리 보잘 것 없을 망정 그 것은 우리들이 새로 쌓아가야 할 출발의 자리임에 틀림없다.
문화는 그 것을 담당한 몇 사람의 전유물일 수 없다. 그 것은 우리 민족 공통의 재산인 것이다. 모두가 참여해서 우리의 문화를 일구어 가야할 시점에 우리는 와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선지자의 시대는 지났다. '한국문화 예술 진흥원' 의 사업으로 마련된 '대한민국 연극제' 가 시행되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연극제는 몇몇 개인이나 단체의 발표 기회를 제공하자는 데 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연극인과 전 연극팬들이 참여하여 우리 연극의 기량을 닦고 길러가는 수련장의 구실을 해야 한다는 데 보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연극제' 는 첫회부터 찬란한 예술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만들어진 행사는 아니다. 이 연극제가 회를 거듭함에 따라서 우리 연극이 조금씩 조금씩 향상하는 모습을 그 안에 담고 또 그 향상을 거국적으로 돕자는 데 연극제의 의도가 있다고 본다.

우리 민중극단이 연극제에 참여한 것도,
뛰어난 예술 작품을 화려하게 선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극제의 참여를 통해서 한 가지라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연극제의 주최자나 방관자나 이번 첫 회의 대한민국연극제가 이런 뜻에서 잘 이루어지고 앞으로 발전되어 지도록 배려와 격려가 있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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