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울 연 극 제  Seoul Theatre Festival               자유게시판   관극후기

   서울연극제 부활을 축하합니다.                                                                                     자료실, 공지사항, 새소식

   극단 비파의 '기막히는 소동들' 이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공연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일정 변경안내문에서)
    모두 8 작품이 공연되려던 당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다.

   극단 풍경 <르 발콩>이 <발코니>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되다.

 
     2004 서울연극제 예선 심사평 심사위원: 김윤철(위원장), 김방옥, 안치운, 한태숙, 허순자(이상 5인)

서울연극제가 부활된 이번 첫 잔치의 심사를 서울연극협회로부터 의뢰 받고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49 편에 이르는 신청자들을 바삐 검토하는 와중에 한국연극협회와 서울연극협회가 연극제의 주최권을 놓고 갈등하는 사태가 있었다.
서울연극협회가 이미 신청을 마감한 뒤에 한국연극협회가 별도로 신청을 받으면서 혼란은 더욱 가증되었다. 연극제 개막을 불과 두 달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불거진 이 유감스러운 사태는 심사위원들을 몹시 민망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갈등을 언론에서 비난했듯이 단순한 '밥그릇' 싸움으로는 이해하지 않았다.
두 협회 모두 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연극제를 대과 없이 치루기 위해서 각자의 입장을 강하게 표현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관)의 문자적 해석과 정신적 해석 사이에 화해와 타협의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심사위원들은 한국연극협회와 서울연극협회가 신사적으로 타협할 것을 진지하게 충고했고, 그러한 타협을 전제로 심사임무를 수행하겠다고 통고했다. 다행히 서울연극협회가 대승적 차원에서 2004 연도 축제에 한해서 한국연극협회가 주최하는 것을 양해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
연극제가 무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 동안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적지 않게 고통을 감수해온 우리 심사위원들은 양 협회가 연극에 대한 존중심을 잃지 않고 합리적으로 결정해준 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겼고 그러한 입장에서 추가로 제출된 12 편의 신청작과 함께 총 61 편에 이르는 작품들을 심사하는 일에 참여했다. 한국연극협회도 이사장 선거를 둘러싸고 빚어진 연극계의 갈등을 봉합하고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겠지만, 한국의 연극과 연극인을 위해서 대승적 입장에서 향후 서울연극협회와 관계를 정리하고 사업조정작업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2005 년도 서울연극제 부터는 좀 더 착실하고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번에 심사에서 우리가 가장 큰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작품 또는 공연의 예술성이었다.
창작극과 번역극을 차별하지 않고 초연작과 재공연물을 다 대상으로 삼되, 그 동안 우리가 너무나 흔하게 접했던 소재나 주제처리, 인물창조, 구성을 가진 작품들은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사실주의든, 순수한 형식이든 혼종의 형식이든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무대 만들기, 새로운 시도 등이 보이는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 이번 심사과정에서 특이했던 것은 별다른 논란 없이 참가작 8 편을 거의 만장일치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그 만큼 이번에 선정된 창작극 4 편, 번역극 4 편의 비교수월성이 확실했다는 시사라 하겠다.

먼저 창작극을 살펴보면 극단 인혁의 <파행>(백하룡 작, 이기도 연출)은 가마고개에 나오는 설화를 골격으로 집단이기주의의 의식과 말로를 도해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규와 불화의 원인을 농경민적 상상력에서 찾으므로서 설화를 차용하여 현실을 비판하는 한 전범을 보인다. 시대를 달리하는 이야기들이 중첩된 잡스러움이 이 희곡의 매력이다.

극단 돌곶이의 <미생자>(윤영선 작 이상우 연출)는 모든 것을 실종한 사람과 세계의 이야기다. 공적공간은 아예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사적 공간만이 확장된 작품으로서 개인적인 것을 극대화해서 사회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비교적 적중하고 있다. 연출의도에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했으나 오히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인간의 존재와 관계에 대한 공포 혹은 우울한 미래에 대한 역설이 읽힌다. 동양적인 사고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 속에 빠른 전개와 인물설정의 특별함, 시공간을 뛰어넘는 연극적인 발상이 매우 흥미롭다.

그룹 동시대의 <박제갈매기>(이희준 작, 오유경 연출)는 체홉의 <갈매기>를 기호학적으로 재창작한 극인데, 식사 - 장례식 - 식사 - 장례식으로 이어지는 일정한 패턴의 구성과 인물들이 나타내 보이는 행동의 일정한 삶 속의 죽음과 죽음 속의 삶에 잘 용해되어 있어 부조리한 체홉적 코메디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연극적 상징과 현실적 상징 사이의 관계를 재미있게 형상화 하면서 반복적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전복이 있는 기호학적 글쓰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극단 대하의 <버들개지>(정영욱 작, 김완수 연출)는 한 가족 3 대에 이르는 이들의 가난, 삶, 죽음, 그리고 그 교차를 통해서 살아있는 자와 영혼을 만나게 하여 한 맺힌 인생을 관조하는 이야기인데, 무엇보다 정영욱의 정교하고 신화적이며 시적인 언어가 놀랍다. 연출자 김완수의 감각에 이 작품이 맞을까, 하는 우려도 다소 있었지만 텍스트가 주는 완성미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언어가 폄하되고 천박해지는 요즘 우리 연극의 상황에서 이 극의 언어는 하나의 경종이 될 수 있다.

이번에 선정된 창작극 네 편 가운데 <미생자>의 윤영선만 빼놓고 세 편이 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한국연극계의 장래를 위해서 매우 희망적인 결과다. 물론 무대 만들기가 텍스트의 힘을 얼마나 살려줄지 모르겠고 작가 - 연출가의 콤비네이션이 다소 걱정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일단 시작이 좋으니 끝도 좋을 확률이 높지 않으까 기대된다.

번역극도 4 편을 선정했는데, 극단 풍경의 <르 발콩>(장 쥬네 작, 오세곤 역, 박정희 연출)은 '혁명과 개혁'이라는 화두에 과다노출되어 있는 한국의 현 정치사회적 상황에 쉽게 대입되는 시의성을 갖는다. 연출자는 한국의 현상황을 "근대적 개념의 혁명"과 인터넷 문화가 발달한 이미지 시대에 뒤섞여 균형이 파괴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미지와 욕망의 메카니즘"을 조명하겠다고 했는데 연출의 의도와 작품의 시의성이 적절히 조합된 것 같았다. 한국적인 상황으로 쉽게 치환 될 수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잘 공연되지 않는 이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학문적 예술적 관심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극단 풍경의 잇단 화제작들이 이 공연을 기대하게 만든 큰 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극단 미추의 <빵집><브레히트 작, 마뉴엘 루투겐홀스트 연출)은 브레히트의 미완성 희곡으로서 베를린 앙상블이 공연한 대본을 번안 각색한 작품인데, 일과 밥을 위한 빵집이 권력의 공간으로 상징되면서 이 안에서 브레히트 특유의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상대적 사유들이 희화된다. 독일인 연출자는 한국의 마당놀이 형식을 연출컨셉으로 삼고 있는데 마당놀이가 서사극적 성격이 매우 강한 우리의 연극형식이고 보면 텍스트와 무대 만들기의 화합이 예상된다. 현대 서양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브레히트의 미완성 희곡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호기심, 한국의 마당놀이에 바탕을 둔 독일 연출가의 연출 컨셉이 예술적으로 무척 흥미롭다.

극단 비파의 <기막히는 소동>(마이클 프레인 작, 서인경 번안 성준현 연출)은 톰 스토파드 이후 영국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지적인 희곡작가 마이클 프레인의 1998 년 작으로서 기계에 갇힌 현대인의 무능력한 삶과 소외를 통렬히 패러디한 작품이다. 언어보다는 음향, 이미지, 조명, 상징적 행동들을 주된 표현수단으로 삼으면서 8 가지의 에피소드로 물질문명의 홍수속에서 소외되고 기계화되어 가는 현대인의 공허한 삶을 기계적으로 희화한 텍스트가 이 극의 매력점이다.

마지막으로 극단 지구연극연구소의 <굿바이 모스크바>(알렉산드르 갈린 작, 김태훈 역 연출)은 우리에게 잘 소개되지 않는 러시아의 현대 극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단 호기심을 자극한다. 극은 러시아의 전통에 따라 사실주의의 정형을 보여주는데, 모스크바의 올림픽을 위해 봉송되는 성화가 멀리서 느껴지는 가운데 모스크바의 거리로부터 추방 당하여 이 곳 임시수용소에 강제 이송된 창녀들의 사랑과 배신과 상처가 시적 극사실주의 안에서 완벽하게 재현된다. 우리의 사회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무척 낯 익은 상황이다. 권력에 의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주제가 정치적으로 구 소련의 붕괴시점과 맞물리면서 권력자 가운데 하나가 창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므로서 작가가 사회적 변화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도 이 극의 특색이다. 러시아에서 수학한 연출자가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신체적 행동법에 기초한 연출을 계획하고 있어 텍스트와 무대 만들기의 조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황망하게 접수된 신청작들 가운데서 이상 8 편의 다양한 예상수상작들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심사위원들에게는 일종의 행운이었다. 비록 준비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텍스트들이 우리로 하여금 기대하게 만든 바가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실천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심사평을 맺는다.

심사위원: 김윤철(위원장), 김방옥, 안치운, 한태숙, 허순자(이상 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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